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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의 적들]<9>"잘 좀 봐줘…" 은밀한 거래

입력 2002-04-09 17:26업데이트 2009-09-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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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7위, 97년 34위, 98년 43위, 99년 50위, 2000년 48위, 2001년 42위….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투명성위원회(TI)가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국가부패지수 순위에서 한국이 받은 성적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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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1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받은 42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로 제3세계권 국가들 수준이다. 싱가포르(4위)는 물론이고 홍콩(14위) 일본 (21위) 대만(27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우리 사회에 ‘검은 돈’이 넘쳐나고 ‘뒷돈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넘치는 검은 돈〓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자고 나면 새로운 부패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웬만한 규모의 부패사건은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이 때문에 부패 불감증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냉소가 나오기도 한다.

온갖 ‘게이트’의 핵심은 돈과 부패한 권력의 결탁이다.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대우그룹의 부실회계 금액이 22조9000억원에 이르고, 외환위기 전후인 96∼98년의 기업 접대비 총액은 10조원이었다. 국가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검은 돈은 흥청망청 넘쳐흘렀다는 얘기다.

지난달에는 전현직 고교 교장 등 44명의 교육공무원이 학교건물 신축공사 등과 관련해 500만∼7000여만원씩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적발됐다. 2월에는 300억원의 구조조정기금을 편법 지원받은 벤처기업과 그 대가로 7억원 상당의 주식 등을 받은 공무원들이 적발됐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정치자금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현직 국회의원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감옥에 가야 할 것이라는 말을 의원들 스스로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부패지수와 사업여건 간의 상관계수는 0.93으로, 국가경쟁력(0.91)이나 경제자유도(0.88)보다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기업활동에서 부패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케 한다.

▽선거는 ‘돈 먹는 하마’〓97년 대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1935억원의 수입을 올렸고 이 중 1009억원을 지출했다고 중앙선관위에 신고했다. 야당이던 국민회의는 수입 516억원, 지출 349억원을 신고했다. 이 액수도 엄청난 것이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방선거와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올해 여야 각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1138억원. 이와 별도로 각 정당이 합법적으로 모금할 수 있는 후원금 한도는 각 400억원이다.

이 중 200∼300명에 이르는 중앙당 사무처 직원의 월급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면 정작 선거운동에 쓸 수 있는 돈은 정당별로 300억원 정도밖에 안된다.

이 돈으로는 지방선거도 치르기 힘들다는 게 여야 재정 실무자들의 고백이다. 사활을 건 총력전으로 진행되는 대통령선거는 지방선거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든다. 대부분의 대선 자금이 불법 루트를 통해 조달될 수밖에 없다.

2000년 16대 총선 출마자 70여명을 대상으로 동아일보가 지난해 선거자금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이 스스로 밝힌 선거비용은 평균 5억1만원으로 법정선거비용 한도액(평균 1억1600만원)의 4.3배나 됐다. 30억원을 썼다고 실토한 후보도 있었다. 서울에서 출마한 한 후보는 “중앙당이 마련해 준 지원금만 해도 5억원이나 됐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부당한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해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정작 선거전이 본격화된 상황에서도 재계가 정치권의 은밀한 지원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고비용 정당구조〓각 정당은 전국 227개의 선거구마다 지구당을 운영하고 있다. 각 지구당은 또 읍 면 동 통 반에 이르기까지 조직 책임자를 두고 있으며 조직원 수는 지구당별로 1000∼3000명이나 된다.

이들은 모두 이른바 ‘관리되는’ 조직원들이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명절에 이들에게 작은 선물 하나씩만 돌려도 수천만원이 들고 선거 때 조직을 움직이려면 금세 수억원이 달아난다”고 말한다.

중앙당이 조직책을 임명하고, 그 조직책이 지구당에 내려와 당원을 모으고 조직을 구성해온 이제까지의 하향식 정당 구조에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조직관리에 드는 비용은 대부분 ‘검은 돈’으로 충당되기 마련이다. 지구당위원장들로서는 이권 개입, 공천 헌금까지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정당구조가 검은 돈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상 11층, 지하 4층, 연면적 8685평짜리 건물을 임차해 중앙당으로 쓰고 있는데 보증금만 37억원이다. 한나라당은 97년 지상 10층, 지하 6층, 연면적 7598평짜리 당사를 짓는 데 수백억원을 들였다.

종이 한 장 생산하지 못하는 정당이 이처럼 ‘거창하게’ 운영되는 것은 결국 검은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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