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보배는]웹 카메라로 나누는 마음의 대화

  • 입력 2002년 4월 9일 15시 21분


김영민 사장이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집에 있는 외아들 윤섭이를 보고 있다
김영민 사장이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집에 있는 외아들 윤섭이를 보고 있다
홍보 대행업체 필커뮤니케이션즈의 김영민 사장(36)은 밤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 하지만 다섯살배기 외아들 윤섭이가 유치원에 다녀와 잠들 때까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는 훤히 꿰고 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집안 거실과 마포구 마포동 김 사장의 사무실에 설치된 쌍방향 웹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부자의 모습을 찍어 컴퓨터 화면에 띄워주기 때문이다.

고교 교사인 부인 이지숙씨(34)는 퇴근 후 유치원에서 윤섭이를 찾아 집에 오면 제일 먼저 거실의 컴퓨터부터 켠다. 이 시간쯤 김 사장은 인터넷 화면의 즐겨찾기에서 ‘집’을 클릭해 윤섭이 페이지에 들어가 아들을 찾는다. 대화는 전화로 한다.

“윤섭이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니?”

“오늘 애니 스토리 봤어. 내일은 대공원 갈 거야.”

“그래? 그럼 아빠가 이따 김밥 재료랑 과자랑 사 가지고 가야겠구나….”

김 사장은 일하는 짬짬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들이 소파에서 폴짝폴짝 뛰고 구르거나 레고 블록을 쌓으며 노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밥투정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면 전화를 걸어 “게임은 한번에 한판씩만 하기로 했지?” “밥 많이 먹으면 아빠처럼 키 큰 사람이 될텐데…” 하며 달래기도 한다.

김 사장은 3년전 16만원짜리 웹 카메라를 두 대 사서 집과 사무실에 설치했다. 요즘엔 값이 7만원대로 떨어졌다. 독일산 ‘비전 GS’라는 웹캠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을 부지런히 뒤진 끝에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처음엔 동영상이 나오는 사양을 선택했지만 컴퓨터의 전송속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4초마다 정지 화면이 바뀌는 식으로 옵션을 바꿨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의 아이를 보고 나와 집에 들어가면 아이는 자고 있고, 일주일 내내 아이와 눈 맞출 시간도 없더라고요.”

부자간에 얼굴 잊어버릴까봐 설치한 웹 카메라는 꽤 요긴한 구실을 한다. 김 사장은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좋다. 윤섭이도 홈페이지에서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와 오랜 시간 놀아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눈치다. 또 ‘아빠 일찍 들어오세요’ ‘아빠 내일이 제 생일이에요’ 하는 메시지를 띄워 놓기도 한다.

가끔은 부인 이씨가 “나 서재에서 수업 준비하고 있을테니 윤섭이 좀 봐 줘” “잠깐 슈퍼 다녀올게” 하며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윤섭이를 부탁할 때가 있다.

그러면 김 사장은 작업중인 화면 한쪽 구석에 윤섭이 페이지를 띄워놓고 아이를 봐 가며 일한다. 가끔 화면에서 윤섭이가 사라질 때가 있다. 그러면 부인을 찾아 “윤섭이가 거실에서 사라졌어” 하고 일러준다. 윤섭이가 불안해하며 엄마를 찾는 기색이면 전화를 걸어 “엄마 잠깐 슈퍼 갔으니까 금방 올 거야. 그동안 아빠가 마술 보여줄까” 하고 안심시킨다.

멀리 떨어져 사는 친가와 처가 부모들도 홈페이지에 들어와 귀여운 손자 얼굴을 보며 즐거워한다. 김 사장은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친지들을 위해 ‘○○월 ○○일 윤섭이 생일 잔치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있으니 기대하세요’ 하는 예고문을 띄운 뒤 이벤트를 생중계하기도 한다.

김 사장은 앞으로 거실뿐만 아니라 집안 방방에 웹 카메라를 설치해 윤섭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볼 계획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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