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년뒤 뭘로 먹고사나 4]모범생보다 엉뚱한 에디슨이 낫다

  • 입력 2002년 4월 3일 18시 04분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용 리눅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미지리서치’의 서영진(徐英鎭·35) 사장. 1997년 창업해 삼보 삼성 LG 등에 유닉스 소프트웨어를 납품해왔다. 직원 40여명과 몇 년간 연구 개발한 것이 작년말 완성되어 올해는 100억원대의 매출을 바라보게 됐다. 소프트웨어에서 세계 1등 기업을 만드는 것이 서 사장의 꿈. 그는 늘 한국에 몇% 안 되는 특성화 교육의 수혜자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경기과학고 1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2기인 그가 입학할 당시 교수나 학생들은 모두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가득했다. 그는 처음부터 소위 명문 종합대를 갈 생각이 없었다. 덕분에 지금의 경쟁력이라도 생겼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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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부분의 대학은 특별히 뛰어난 게 없습니다. 미국처럼 연구중심대학이라든가 일반 인재양성대학 등으로 특성화되어야죠. 모두 일류 대학을 외치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삼류일 뿐입니다. 교수들이 학연 지연으로 얽혀 퇴출이 안 되는 것도 문제고요.”

대학 졸업 후 ‘한글과 컴퓨터’에서 3년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이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랄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회사를 나왔다.

“한국 기업들은 악조건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기초연구를 뒷받침하지 못하니 기업들이 다 떠안을 수밖에요. 그러니까 세계적인 기업으로 뻗어가기 어려운 겁니다.”

자신이 기초연구의 밀알이 되겠다며 정부출연연구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 쓰는 일에 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허비하는 현실이 한심해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관련기사▼

- 이공계 인력양성 외국사례

▽인재양성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서 사장의 사례는 한국이 교육-연구-생산으로 이어지는 경제의 연결고리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최대 자산은 우수한 인재. 성실성과 손기술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기업과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대학이 바뀌어야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살아난다”고 입을 모은다.

LG전자 인사담당 한만진(韓萬珍) 상무는 “지금 기업들은 한국의 일류가 아니라 세계 일류의 인재가 필요한데 한국 대학의 교육 내용이나 학생들의 수준은 기업의 요구를 못 따라온다”고 비판했다.

한 상무는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도 선단식 운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한의대나 포항공대, KAIST 등을 제외하고는 한 가지라도 전문성을 갖춘 대학이 없다는 진단이다. 범용적인 인재만 길러내고, 전문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며, 기업에 필요한 디지털 글로벌 교육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정보기술(IT)산업은 3개월 단위로 트렌드가 바뀌는데 대학에서는 10년 전 사례와 이론을 가르친다”고 꼬집었다. 대학에서 길러주어야 할 기초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기업이 신입사원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면 결국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래에 필요한 자질은 창의성〓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성실하고 주변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과거의 인재상이었다면 지금은 창의와 혁신, 패기 등이 중요한 조건이다. 전문성과 어학능력은 기본. 따라서 사회는 이러한 인력을 길러내는 쪽으로 교육방향을 맞춰야 한다.

LG전자는 모험-특이형 인재를 별도로 선발한다. 미국 선물거래사, 해병대 전역장교, 인터넷홈페이지 경진대회 우승자, 대학 응원단장 등 ‘튀는’ 인재들을 뽑는다. 단순히 공부만 잘 하는 사람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과 관련된 핵심 인재에 대해서는 이직보상금, 스톡옵션, 파격적 휴가 등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스카우트해온다.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 수시로 부사장 등 임원을 단장으로 한 채용 인력을 파견해 사람을 구한다. 국내에서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지불하는 비용이다.

▽기업의 교육프로그램에 주목해야〓제도교육이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지 못하고 겉도는데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 된다.

사회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교육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교육프로그램은 제도교육이 참고해야 할 인재 육성 방향이기도 하다.

제일기획은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 ‘파란(破卵)연수’ 등 이색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파란연수란 ‘알을 깨는 변화와 혁신’이란 뜻. 고대 잉카 마야문명, 브라질 아마존 탐험, 아프리카 원시문화 등 평소 접하지 못한 글로벌 문화를 2주간 체험하면서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도록 한다는 것.

삼성SDS는 지난해 10월 ‘마이 프로웨이(My Proway)’란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원들은 누구나 연간 200시간의 의무교육을 받도록 한 제도로 연간 근무시간의 약 10%를 교육에 투자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삼성 LG SK 등 대부분의 대기업이 10주 이상의 어학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도교육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조차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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