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교수의 만화칼럼]건설적 영웅과 투쟁적 위인

  • 입력 2002년 3월 7일 14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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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성세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40, 50대에게는 독특한 면이 있다.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존경할만한 사표(師表)를 지니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광복을 전후해 태어났기에 외세의 지배는 직접 당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물려받아야 했던 것은 찢어지는 가난과 혼란, 그리고 절망뿐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성장기는 온통 전쟁과 정변, 독재와 탄압의 암울한 현실 속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과 자부심이 아니라 자괴감과 불운으로 여겨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런 나라를 남겨준 선조들 가운데 과연 존경하고 흠모하여 인생의 사표로 삼을만한 인물이 많을 리 없다. 자연 그들은 누구를 존경할 줄 모르고 인생을 설계하는 데 옛 어른들의 삶에서 보고 배워 온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전 세대가 취해온 행동 패턴과는 삶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면이 어찌 보면 다시는 불행한 시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헝그리 정신’의 원천이 되어 한강의 경제기적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존경받는’ 인물들의 성격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들과 판이하게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국민적 사표가 있다. 국민 스스로가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심이든, 인위적으로 강조해 내세우는 인물이든…. 예컨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들, 중국의 쑨원같은 혁명가, 유럽의 전후 경제를 부흥시키고 민족의 자존심을 고양시킨 대통령과 총리들, 일본의 개국 이후 근대화를 추진한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그렇다. 이들은 국민이 우상처럼 떠받드는 근 현대사의 ‘영웅들’로 각 나라에서 거리, 기념관, 광장, 공항의 이름들로 기려지고 있다.

여기에 비해 한국인들, 특히 기성세대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 등이며 조금 추상적이긴 해도 세종대왕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와 우리는 커다란 차이점을 갖는다. 외국의 사표들이 대부분 국가를 세우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건설적’인 존재인 데 비하여 우리의 경우는 한결같이 ‘투쟁적’인 인물들, 특히 일본과 싸운 인물들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또 하나 모두 그 투쟁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항일투쟁에 생명을 바쳐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인물들로,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의 노예가 되었던 역사의 상처는 아직까지도 깊이 우리 민족의 의식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바친 이들을 흠모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은 오늘의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 이전투구를 일삼는 수십년간의 우리 정치판에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지도자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자리잡고 있음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표로 삼을만한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존경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무조건 불신하고 폄하하고 냉소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그 어떤 지도자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이 아시아 전체에서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이를 기성세대들은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콩 심은 데 콩 나는 이치가 아닐까. 이웃을 존경하고 사회를 사랑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날, 진정한 우리들의 사표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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