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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LA리포트]미국 사회는 승자들의 천국

입력 2001-06-12 18:22업데이트 2009-09-2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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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느낀 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승자독식의 정치' 로부터 '승자독식의 사회' 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제되기도 했습니다만, 미국은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으며 특정 주에서 이긴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반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승자독식주의가 정치에서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는 것입니다.

▼빈부격차 갈수록 벌어져▼

미국 대기업의 직원과 최고경영자의 연봉 차이는 1960년대에 1대 41이었고 70년대까지는 대강 그 수준이 유지됐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 이후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고 기업에도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면서 격차는 빠르게 벌어져 96년에 1대 326, 99년에는 1대 475를 기록했습니다. 즉 2년 전을 기준으로 최고경영자는 평균 1년에 직원 475명의 연봉인 20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일반직원이 월 200만원을 받을 때 최고경영자는 9억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이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한국의 경영자들이 측은하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듭니다.

게다가 줄일 수 있는 인력을 최대한 찾아내 과감하게 정리해고할수록 유능한 경영자로 평가되어 더 높은 연봉에 스카우트되는 풍조입니다. 허긴 유능한 최고경영자를 일반직원 1000명 분의 연봉을 주고 모셔오더라도 그가 불필요한 직원 3000명을 정리해주면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고도 2000명 분의 인건비가 절약되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남는 장사입니까? 이같은 추세에 따라 미국사회는 중산층은 무너지고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양극화되는 20대 80의 사회, 승자독식의 사회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는 부의 축적이 다른 사람에게도 떡고물을 떨어뜨려 사회 전체적으로 득이 됐지만, 이제는 극소수의 부의 축적이 국민의 45%에 대해서는 해를 끼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의 축적이 절반에 가까운 국민의 빈곤화를 대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8년 이후 사상 최악으로 벌어진 빈부격차가 보여주듯이, 현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면서 한국 사회는 미국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빈부격차 확대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 따라서 위기가 극복되면 사라질 현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가져다 준 구조적 결과이며 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지속될 우리의 미래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현 정부의 해법에 따르면,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기업은 더 과감하게 정리해고를 하고 임금은 떨어지고 빈부격차도 미국처럼 더 벌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경제가 회복되지 않은 것은 빈부격차가 아직도 충분히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같은 사회적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기회의 땅이며 낙오자는 체제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 때문일 뿐이라는 아메리칸 드림 의 신화로 인해 별 탈없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는 인종문제입니다. 특히 세계화의 영향으로 새로운 이민물결이 거세지면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백인이 이미 소수민족으로 전락했고 2050년에는 미국 전체로도 소수민족화할 전망입니다.

▼인종문제 언제 터질지 몰라▼

게다가 세계화에 의한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에 따라 가장 타격을 받은 아프리카계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고 백인 노동자들은 그들대로 경제적 어려움을 새로운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어 인종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21세기 미국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달리 부의 축적 과정에 대한 정당성이 약하고 평등의식이 강한 우리의 경우 미국식의 사회적 양극화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그동안 'LA리포트' 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강대 교수·현 UCLA 교환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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