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록의 독서일기]"우리는 집에 대해 얼마나 알까?"

  • 입력 2001년 3월 12일 16시 52분


'한복은 맨살의 부드러움'이라고 절창(絶唱)한 김준태라는 시인이 있었다.

필자는 워낙이 한복을 좋아해 고등학교때부터 그의 시구처럼 장롱에서 아버지 한복을 훔쳐 입기도 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회사에까지 입고 다닌다. 가능하면 평일에도 입고 다니고 싶다. 검정 두루마기를 착 걸치면 백범 김구선생이나 백기완선생 닮았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그러나 그게 맞는 말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상상력의 결핍에서 나온 입바른 말이다. 두루마기는 그분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왜 우리옷이 '별종'이란 말인가. 온갖 색깔의 머리모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면서, 왜 자꾸 힐끔거리는가.

한복(韓服)은 우리옷이다. 양복은 서양옷이다. 한옥은 우리의 집이다. 양옥은 서양인들이 사는 집이다. 20여년전만 해도 양옥이나 양복이라는 말을 흔히 썼으나 지금은 아니다. 그대신 한복, 한식, 한옥이라는 단어가 자리잡았다. 이제는 음악도 양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음악은 국악이다. 우리의 문화가 왜 이처럼 '소수'로 밀렸으며, 심지어는 '낡은 것'처럼 인식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근대화와 현대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과정, 불과 100여년 사이에 우리네 의식주는 너무 많이 변했다. 우리의 것을 찾는 사람을 민속학자라 부르며 귀하게 여기는가, 아니면 고리타분하고 시속에 영합하지 못한 어리보기로 보는가.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여기에 소개하려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돈은 안될 책이지만 참으로 값지고 귀하다. '우리생활 100년-집'(김광언 지음 현암사 펴냄 394쪽 2만원). 인하대 사범대교수이자 국립민속박물관장으로 있는 저자 김광언씨의 출간된 저작물들을 보자. 제목만 봐도 이분이 평생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 수 있겠다. '한국의 농기구' '한국의 옛집' '한국의 주거민속지' '한국의 부엌' '한국의 집 지킴이' '디딜방아 연구' '기층문화를 통해 본 한국인의 상상체계'….

우리는 당장 아버지세대가 몸으로 겪은 주거생활의 변천사에 대해서 까막눈이다. 무얼 하나 제대로 아는게 있나. 몰라도 너무 모른다. 편리만을 좇다가 우리는 주거문화로 엮어지는 가족문화의 도타움을 잃지는 않았을까. 아파트 주거문화에 익숙하여 핵가족을 너무나 당연시하고 세대간의 대화 단절이 무슨 대수냐고 종주먹을 들이대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일까. 저자는 그런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제는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우리네 착하고 순박한 심성은 어디에서 찾을까, 고고샅샅 발품을 팔면서 통곡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조왕신이나 업구렁이가 무엇인지, 풍수지리는 왜 필요하고, 제사때 따로 차리는 성주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조목조목 짚어주는 저자의 충정이 읽힌다.

4장은 더욱 흥미롭고 특이하다. 20세기와 더불어 자취를 감춘 열 다섯분의 '생업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30대까지는 이런 생활문화의 '멋'과 '맛'을 조금은 맛보았을까. 나무장수 두부장수 젓갈장수 물장수 등짐장수 지게장수 똥장수 철물장수 소장수 맷돌장수 각설이꾼 부대기꾼 일꾼 매사냥꾼 배목수가 바로 이들이다. 예전 '뿌리깊은 나무'에서 '민중자서전'을 기획, '숨어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구전(口傳)책을 펴낸 적이 있었다. 이들의 생업이야말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세대들이 집을 바탕으로 주거생활을 영위케 한 은인들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5일장이 유지되고 남아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이번 주말에는 하다못해 성남 모란시장이라도 나들이하여 그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

최영록<동아닷컴 기자>yr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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