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디지털 그늘]콘택트렌즈 속 가상현실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07분


이제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후면 데스크 탑 컴퓨터는 구세대의 유물이 될 것이고 모바일 컴퓨터가 보편적 형태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컴퓨터 본체는 허리춤이나 구두 밑창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모니터는 안경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미국의 마이크로비전사는 광선을 망막에 직접 쏘아서 이미지를 구현하는 ‘가상망막 디스플레이(VRD)’를 이미 개발했다. 가느다란 한 줄기의 빛으로 망막의 시신경들을 빠르게 훑어가듯이 자극해 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이 시스템은 스크린 화면과 현실 세상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는 미 공군 조종사들에게만 공급해 왔으나 내년 상반기부터는 일반인들에게도 시판한다. 마치 멋진 선글라스처럼 생긴 이 망막디스플레이는 기존의 모니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선명한 이미지와 완벽한 3D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 3D화면과 현실 동시에

브리티시 텔레콤의 이안 피어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10년 후면 망막에 미세한 레이저 광선을 직접 쏘아 이미지를 제공하는 ‘액티브 콘택트렌즈’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 한다.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얇은 콘택트 렌즈에 레이저 광선 방출 장치와 전자 신호 수신 장치를 삽입하는 기술은 이미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액티브 콘택트렌즈 착용자는 컴퓨터 화면과 현실 세상을 동시에 겹쳐서 볼 수도 있고, 현실 세상을 ‘끄고’ 컴퓨터 화면만 볼 수도 있으며, 아니면 한쪽 눈으로는 스크린을, 다른 눈으로는 바깥 세상을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귀에도 3차원의 사운드를 직접 제공하는 시스템도 등장하여 귀걸이처럼 착용하거나 귓속에 삽입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 한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야만 공부나 일이 손에 잡히는 우리는 구세대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요즘처럼 가을 햇살이 투명하게 맑은 날이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아름다운 산길을 산책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전자책(e―book)을 읽거나 아니면 한적한 곳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입체 화면과 음향을 통해 좋아하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본다'-'듣는다' 의미 변화

이리하여 ‘본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의 의미 자체가 점차 달라지게 될 것이다. 보는 것은 항상 보이는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와 시선의 방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망막에 생생한 영상을 직접 쏘아대는 액티브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게 되면 시선이 어디를 향하든 상관없이 컴퓨터의 이미지는 유령처럼 항상 우리 앞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액티브 콘택트렌즈’나 ‘귀 삽입형 미니 스피커’는 다른 사람 모르게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무선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예컨대 사업상 사람을 처음 만나 악수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에 요구해서 즉시 살펴 볼 수도 있다.

우연히 눈이 맞은 젊은 남녀가 서로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사실은 무선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검색하고 있을 수도 있고, ‘별빛같이 반짝이는 그대의 눈동자’가 사실은 ‘액티브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당신의 신상정보를 펼쳐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운전때 휴대전화보다 위험

각종 시험의 감독관들 역시 수험생들의 눈과 귀를 열심히 검사해보느라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며, 운전시 휴대 전화 사용보다 훨씬 더 위험할 액티브 콘택트렌즈 착용 운전자의 단속 문제 역시 커다란 과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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