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만난사람]시각장애 러넌의 '아름다운 도전'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57분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시드니올림픽. 숱한 ‘각본없는 드라마’가 연출돼 지구촌을 열광시키고 있다.

그러나 27일 육상 여자 1500m예선에서 말러 러년(31·미국)의 ‘인간승리 드라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값진 것이었다. 시련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한 장애인이 보여준 ‘끝없는 도전’은 진한 감동을 넘어 인류에 큰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

망막퇴행성 질환 때문에 법적으로 ‘시각장애인’으로 분류된 그녀는 콘택트랜즈로 시력을 교정했어도 5m이상을 넘어서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당당히 겨뤘고 4분10초83의 7위 기록으로 24명이 겨루는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그가 삶을 통해 보여온 ‘아름다운 투쟁’은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를 찾은 관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러년은 “이제야 진정한 올림피언이 되었다. 나는 올림픽에 출전한 첫 시각장애인 선수로 기억 되기 싫다. 올림픽이란 축제에 서고 싶었고 지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체조와 축구를 즐겼던 평범한 소녀였던 러년에게 ‘악의 병마’ 찾아온 때는 아홉살 때. 열네살 때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시력과 별로 상관이 없는 육상에 뛰어들어 자신에 찾아온 ‘불행과의 투쟁’을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과 본능에 따라 달리는 것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이들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으로서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달리기였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92년 장애인올림픽때 100, 200, 400m와 멀리뛰기를 석권해 4관왕을 차지하면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투쟁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96년에는 미국 올림픽대표 선발전 7종경기에 도전했다. 10위로 탈락했지만 그에겐 올림픽 출전이 또다는 목표가 됐다. 그리고 4년뒤 미국 3위로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고 최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통의 격려전화와 E―메일을 받고 있는 러년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러년은 지금도 14세의 중급 장애인을 가르치는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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