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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읽기]KBS 사극 ‘태조 왕건’은 80%가 픽션이다

입력 2000-07-14 17:35업데이트 2009-09-2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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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중인 KBS 1TV 사극 '태조 왕건’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가 나왔다. '비판적 지지'는 자칫 ‘고춧가루 뿌리기’ 아니면 ‘사탕 발림’이 되기 쉬운데 이 사람은 비판적 지지의 말뜻 그대로 '태조 왕건'에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보낸다. 박영규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소설 ‘후삼국기’의 작가이자 '한 권으로 읽는' 역사서 시리즈 '고려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의 저자니 '태조 왕건'을 추켜주거나 씹어댈 필요조건은 갖춘 셈이다. 거기다 주말 술 약속을 마다하면서 첫 회부터 지금까지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다 봤으니 충분조건까지 갖춘 '태조 왕건'의 충성스런 시청자인 것이다.

속사정 잘 아는 '선수'로서 그는, 어려운 여건을 딛고 작업하는 제작진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게 영 부담스러웠는지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은 아니었다. 살이 푹푹 팰 만큼 단호하게 회초리를 휘둘러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주인공 왕건 역을 맡은 최수종씨 얘기부터 해보죠.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왠지 연기에 깊은 맛은 없더군요?

왕건은 친화적이고 유화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기 힘이 없어도 주변 세력을 끌어 모으는 어떻게 보면 음흉한 사람이지요. 겉으로는 의(義)와 충(忠)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내일의 음모를 도모한 거죠. 그런 점에서 표정으로 모든 걸 다 드러내는 최수종씨의 연기는 어울리지 않죠. 조금만 심각한 일이 생겨도 그 큰 눈으로 다 말해주니까요.

박씨는 최수종씨의 연기를 거론하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왕건의 말년 초상화도 있고 ‘고려사’에도 왕건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나오니까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실제 왕건은 눈이 작지만 눈매가 굉장히 날카롭고 두상이 계란 형태로 이마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최수종씨의 외모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애꾸눈 잭처럼 시커먼 안대를 하고 나오는 게 거슬리지만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씨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좋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개성 있는 연기를 해서 그렇겠죠. 그렇지만 긴 장삼을 걸치고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으로 전쟁터를 누비지는 않았을 겁니다. 왕이 해적처럼 시커먼 안대를 하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지요. 왕조를 세우면 왕실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자손을 많이 두려고 하는데 여자를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궁예는 왕이 되고 16년 뒤인 911년에야 중앙집권을 꾀하기 위해 미륵불 신앙을 정치논리로 활용하는데 너무 승려 신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기도 너무 심각하고 방어적이지요. 궁예는 상당히 호방한 인물이고 배포가 컸거든요. 지금부터는 캐릭터를 조금씩 바꿔 나갈 때가 아닌가 싶네요. 장삼도 벗었으면 좋겠습니다.

▼견훤의 비중이 약한데 그 역을 맡은 서인석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견훤 역을 맡은 서인석씨의 표정 연기는 좋다고 봅니다. 다른 드라마에서도 약간 음흉한 느낌을 주는 연기를 한 적이 있는 서인석씨의 이미지는 견훤의 그것과 그런대로 어울립니다. 덩치도 크고 대단히 용맹스러운 견훤은 한편으론 약아 빠진 인물이었거든요.

▼후삼국이란 시기가 TV 드라마로 다루긴 힘든 시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후삼국시대 45년은 우리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전국시대였습니다. 그만큼 시대를 풍미한 영웅들이 많았기 때문에 등장인물 설정하기가 어렵지요.

▼무엇보다 사료가 적은 시대여서 상상력 부족한 작가는 함부로 달려들기 어려운 작업 같던데.

어떤 인물은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텐데 이름만 남아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사료로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 외관이나 인테리어는 상당 부분 작가의 상상력으로 처리해야지요. 어떻게 보면 힘들겠지만 한편으론 작가가 상상력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박씨는 ‘태조 왕건’의 내용이 사료 20%, 픽션 80%로 구성돼 있다고 봤다. 그것이 시청자가 불만을 토로할 문제는 아니며 사학자가 드라마를 놓고 사실 여부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료에 이러이러한 내용이 나와 있고 나머지는 픽션이다라는 사실을 밝혀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재미를 위해선지 준비가 부족해서 그런지 드라마의 20%를 차지하는 사료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왕건, 궁예, 강비를 삼각관계로 엮어 놓는 건 좀 심한 거 아닌가요.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 대중을 끌어 들이려는 의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나치다는 느낌은 들더군요. 나이차가 20살이나 되는 궁예와 왕건이 한 여인을 놓고 대결하는 건 넌센스죠. 왕건의 반정을 치정사건으로 보게 할 수도 있구요.

▼왕건이 도선에게 ‘도선비기’를 전수받는 대목도 아찔했습니다. 저기서 망가지는구나 싶기도 하고 무슨 코미디 같기도 하고.

저도 무슨 용비어천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될 인물이었다는 식의 결정론적 시각은 안이한 거지요. 드라마적으로도 재미 없잖아요? 치밀하지 못하면 유치한 거거든요.

▼이야기가 너무 왕권과 궁예의 이중 구도로 쏠리는 경향이 있더군요?

많은 배우를 쓸 수 없는 방송 환경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려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견훤과 신라를 소홀하게 다루는 건 문젭니다. 견훤은 궁예보다 먼저 도읍을 정해 국가를 세웠고 영토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신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비록 세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견훤과 궁예가 세력 다툼을 할 때 신라가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거든요. 견훤이 신라 땅을 잠식해 가는 과정도 없고 신라 쪽 인물이 안 나오니까 견훤이 살아날 수 없죠. 삼각구도가 안 이뤄지는 겁니다.

▼상황을 지나치게 축약하다 보면 인물, 상황이 왜곡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사료에 나오지 않는 대목을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는 건 나쁠 게 없다고 봅니다. 사료에는 안 나오지만 궁예와 유모가 달아나는 장면을 긴박하게 그린 대목이나 견훤이 능창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일을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것처럼 처리해서는 곤란하지요. 견훤이 892년에 완산에 도읍을 정했을 당시에 궁예는 양길의 부하였고 896년에 가서야 송악에 도읍을 정하는데 양쪽이 비슷하게 성장한 것처럼 그리는 건 잘못이죠. 한때 견훤보다 더 큰 세력을 펼친 양길을 의심 많고 겁 많은 인물로 그리는 것도 못마땅합니다. 궁예에 관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초기에 네 명의 장수 김대검 장일 장귀평 모흔을 사상으로 삼아 성장했는데 드라마에선 아예 나오지 않더군요.

▼‘태조 왕건’엔 비록 허점이 많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큰 드라마입니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고려의 역사를 되살려냈으니까요. 사료 부족을 무릅쓰고 대작에 도전한 작가나 방송사는 높이 평가해줘야겠지요?

물론입니다. 제가 볼 때는 작가 이환경씨가 무척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열악한 방송 환경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극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史實)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고 재미를 주면 되는 것이지요.

▼‘태조 왕건’이 좋은 드라마가 되기 위해 조언을 몇 말씀 하신다면.

왕건이 신라를 흡수하기 위해 굉장히 공을 많이 들입니다. 그 과정을 부각시켰으면 하고 신라에 대한 내용을 보강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훨씬 극에 힘이 생길 겁니다. 신라가 왜 어떻게 무너지는지, 젊은 왕들이 왜 자꾸 죽는지를 다뤄도 재미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해상에 벌어지는 전쟁이 당시에는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돈은 많이 들겠지만 옛날의 해상전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전쟁은 중국의 평원 전쟁을 연상케 하는데 한반도는 지형상 산성전쟁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 점도 좀 참조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지금부터라도 드라마로 그리기 애매한 대목은 사료의 내용을 소개해 주라는 겁니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거죠.

인터뷰가 끝나고 박씨는 언제 한 번 ‘태조 왕건’의 작가인 ‘술고래’ 이환경씨와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료에 얽매여 딱딱하게 쓴 대목을 훨씬 재미있게 그리기도 했지만 힘겨운 일을 꿋꿋하게 해나가는 남자에게 동지애 같은 것도 느껴진다는 것이다. 박씨는 앞으로도 ‘태조 왕건’을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란다.

김태수<동아닷컴 기자> t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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