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닥터의 건강학]보철 구강외과 김영수-권종진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43분


서울대 치대 김영수 임성삼 장영일교수,고려대 안암병원 치과 권종진교수가 각각 보철 보존 교정 구강외과 부문 베스트닥터로 선정됐다.

동아일보 헬스&사이언스팀이 전국 15개 대학병원에서 구강질환을 담당하는 전문의 62명에게 분야별로 설문조사를 받은 결과다.

임교수(60)는 충치 등 치아에 생긴 병을 치료하는 보존 분야의 ‘대가’. 대통령의 치아건강 자문의사이기도 한 그는 매년 미국 신경치료학회에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국의 치과 신경치료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교수(54)는 치아 교정 분야의일인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서양인과 달리 아래턱뼈가 지나치게 성장하는 반면 윗턱뼈의 성장이 부족한 한국인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대 치대 김영수교수▼

서울대 치대 보철과 김영수교수(62)는 14년전 자신이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당시 그는 무작정 스웨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전 미국 하버드대 치대 연구교수 시절 한번 만난 ‘인연’을 앞세워 스웨덴 예테브리대 브러너막교수를 설득할 작정이었다. 김교수는 몇 번의 면담신청 끝에 만난 브러너막교수에게 1년동안 하버드대에서 갈고 닦은 임플란트 실력을 설명했다. 브러너막교수가 개발한 임플란트를 시술할 수 있는 ‘준비된 의사’임을 강조했다.

또 세계의 임플란트 재료를 독점 생산하는 스웨덴의 노벨 바이오케어사로부터 재료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도 했다.

계속되는 거절과 이어지는 설득…. 일주일 뒤 김교수는 브러너막교수의 승낙과 3만달러어치의 임플란트 재료를 들고 귀국했다. 세계적 수준의 실력이 없으면 단 한 개의 임플란트도 팔지 않는 바이오케어사의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다.

“남이 한번도 안한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시술하고 있다는 임플란트에 대한 인식이 국내에는 전혀 없었을 때였습니다.”

‘한번 맘 먹은 일은 반드시 해낸다’는 그의 철학이 임플란트의 국내 도입을 성공시킨 것이다.

나비넥타이 정장차림의 브러너막교수를 만난 이후 김교수도 나비넥타이를 매는 습관이 생겼다. 자신의 실력과 열정을 인정해준 이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제자를 대하는 모습도 닮아갔다. 제자의 개인적인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한번 내준 숙제는 밤을 새서라도 시간내에 해내야 했다. 특히 환자 치료과정에서 약간의 실수라도 하면 “환자는 교육 재료가 아니다. 환자를 상대로 연습할 생각이면 당장 그만둬라”며 혼쭐이 난다.

너무 엄한 것 아니냐는 주위에 평가에 대해 김교수는 ‘Hard training makes one strong(혹독한 훈련이 강한 제자를 길러낸다)’고 맞선다. 명장 밑에 약졸 없고 호랑이가 고양이를 낳지 않듯이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갖추려면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에게도 혹독하다. 골프는 시간을 많이 뺏겨 하지 않는다. 주말에도 교수실로 나와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검토하고 연구에 몰두했다. 1년중 명절과 휴가를 빼면 연구실을 집 삼아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 결과 1988년 전세계에 유통중인 미국 스웨덴 일본 등의 6개국 제품을 동물실험 생체실험 등 6가지 방법으로 비교 분석한 논문으로 미국치과임플란트학회에서 학술상을 탔다.

지난해에는 수명이 길고 합병증이 적은 ‘서울대 임플란트’를 개발했다. 올해에는 이뿌리가 기울어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나팔모양 임플란트’를 개발,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학회활동도 열심이었다. 대한치과보철학회장 등 지금까지 그가 역임한 학회장만 5개. 현재는 대한치과의사협의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임플란트는 보험이 안돼 한 개당 350만∼400만원이나 드는 비싼 시술입니다. 내 월급으로도 엄두를 못내죠.”

김교수는 임플란트 시술을 할 때마다 ‘작은 전쟁’을 치른다. 입안의 침이 마르고 등에 땀이 흐른다. 조금만 한눈을 팔았다간 실수가 생기고 환자에게는 곧바로 부작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재료만 쓰고 시술후 환자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덕분에 1986년 이후 1000여명에게 3320개의 임플란트를 심어 95% 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 1475건은 김교수가 자체 개발한 국산품을 시술(성공률 90%)한 것이다.

김교수는 건강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그가 하는 유일한 운동은 주1회 퇴근길에 헬스클럽에 들러 땀을 빼는 것. 서울대 치대 산악부 창립회원이지만 등산도 거의 못하고 있다. 술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담배는 한때 2,3갑씩 피웠지만 20년전 끊었다.

스트레스는 일로 푼다. 그는 최근 ‘임플란트의 동의보감’을 집필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고려대 안암병원 치과 권종진교수▼

긴급, 긴급, 긴급….

고려대안암병원 치과 권종진교수(51)는 올해초 일본 도쿄 부근 야마나시병원으로부터 급전을 받았다. 30대 한국인 남성이 교통사고로 중상인데 도쿄(東京)대병원에서도 치료를 장담못한다는 것. 환자는 과속 승합차의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부딪혀 코 아래 얼굴 앞부분이 ‘없어진’ 상태.

급박한 ‘공수(空輸)작전’이 시작됐다. 일본측에선 응급호흡장치를 설치해 환자를 비행기로 옮겼고 권교수도 급히 김포공항으로 앰뷸런스를 보냈다. 환자는 비행기 안에서 2, 3번 ‘고비’를 맞았고 병원까지 살아서 도착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권교수는 환자를 맞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12시간 뒤 수술실 문이 열렸다.

“갈비뼈를 떼어내 얼굴뼈를 만들고 광대뼈 관절도 만들었습니다. 살은 여기저기에서 떼어내 붙였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이 환자는 요즘 혼자 라면을 먹는 정도까지 회복됐다. 권교수는 이런 ‘대수술’을 매년 두 세 차례 한다.

그는 수시로 국제학회에서 임플란트(인공치아) 시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지난해 산뚱(山東)대학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 CCTV에 출연해 특강했고 산뚱대에선 ‘권교수에게 시술을 받으려고 환자들이 줄잇고 있으니 빨리 와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곧바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치와 수명이 긴 특수 임플란트에 대해 국제특허를 각각 출원해 놓았다.

권교수는 환자의 갈비뼈를 떼어내 얼굴뼈를 만들어준다. 말하자면 ‘갈비뼈로 갈비를 씹게’ 하고 있다. 구강종양, 심한 주걱턱, 턱관절장애 환자의 수술도 맡는다.

“입 안에 화장지 조각 같은 돌기가 나면 구강암일 가능성이 크므로 얼른 진료받아야 합니다. 치주염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퉁퉁 부으면 재빨리 목을 찢고 고름을 빼내야 하는데 매년 4, 5명이 방치했다가 고름이 가슴까지 내려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권교수는 양치질 횟수보다 얼마나 꼼꼼이 닦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치과에서 치아에 색소를 바르는 등의 방법으로 세균에 ‘색동옷’을 입힌 뒤 양치질하면 안닦인 부분을 금방 알수 있습니다.”

권교수는 참 바쁘다. 현재 5개 학회의 이사 및 위원이다. 매년 2∼4월 주말에 8시간씩 임플란트 연수회를 열어 지금껏 200여명에게 가르쳤다. 올해초부타 야간 임상치의학대학원의 원장을 맡아 더 바빠졌다.

권교수는 매일밤 12시경 퇴근해 다음날 오전 5시반경 깬다. 기상 직후엔 30분 실내 자전거 타기, 쪼그려 앉아뛰기 등으로 땀을 뺀다. 그는 “요즘 원체 바빠 예전처럼 운동하진 못하지만 젊었을 때 태권도 테니스 암벽타기 등 에 빠진 것이 지금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권교수가 하루 3, 4시간 자며 이룬 ‘최고수’ 자리는 그의 시련 때문에 더욱 빛난다. 그는 3년 전 어머니가 숙환으로 숨지기 전 남긴 유언이 귀에 생생하다.

“술 담배는 끊고… 며늘아기는, 가련한 며늘아기는 네가 끝까지 지켜라….”

권교수는 아내를 끝까지 지켜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엔 지금도 뼈저리게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비록 담배는 아직 못끊고 있고 1주 한 번은 폭음하지만.

권교수의 아내는 14년 전 30대초의 나이에 목의 모세혈관이 막혀 쓰러진 뒤 지금껏 중환자실에 있다. 권교수는 매일 사랑하는 아내를 병상에서 만나야만 했다. 지금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자란 자녀에게 ‘엄마’ 역할도 해왔다. 두 아이와 함께 눈물을 훔치며 장례식을 준비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주위에선 권교수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의 입가에 늘 미소가 흐르기 때문. 환자를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며 가난한 환자를 만나면 진료비를 줄이려 고민한다. 노래방에선 신세대 노래를 부르고 후배들에게도 밝은 노래를 권한다. 요즘엔 장애자를 위한 치과 진료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다.

그를 곁에서 도와주고 있는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권교수의 눈과 마음은 하늘과 호수 같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밝은 색깔과 깊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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