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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구칼럼]나누는 삶, 베푸는 삶

입력 1999-02-19 19:20업데이트 2009-09-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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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집을 경영하는 김수영씨(48) 부부는 이번 설에도 과자 등 선물 꾸러미를 들고 경기 고양시 ‘천사의 집’을 찾아 신체장애아들의 몸을 씻어 주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파출부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최서진할머니(63)도 설 전날 양로원을 찾아 이것저것 준비해간 음식을 대접하며 노인들을 위로했다.

▼ 보통사람들 이웃사랑

김씨 부부나 최할머니는 이름난 독지가도 아니고 자선사업가도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들의 선행(善行)이 신문에 보도된 적도 없다. 그저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늘 마음에 걸려 오래 전부터 이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했다.

갈수록 인성(人性)은 황폐해지고 뇌물과 패륜과 부조리가 판을 치는 사회, 우리는 희망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언론에 비치는 어두운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주위를 살피면 그래도 우리 사회에는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 더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 모르게’ 나누고 베푸는 인정이 살아 있다. 이번 설연휴 기간에도 우리는 그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라 자수성가한 봉제업체 회장 김종은씨(51). 설연휴 동안 그는 매일 점심때면 서울 서대문공원을 찾아 결식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했다. 김씨는 못다한 효도를 대신하는 심정으로 17년째 무료급식을 해오고 있다는 보도다. 또 설날을 맞아 서울 월곡동 산동네 42가구에 일주일분 반찬을 만들어 떡과 함께 나눠준 자원봉사자들이 있는가 하면 공공근로로 번 돈을 추렴해 인근 노인들에게 떡국을 대접한 노숙자들의 ‘보은의 설잔치’가 IMF한파를 녹여주기도 했다.

4년 전. 그러니까 95년6월, 한 맹인악사가 경기 여주군 소재 장애인복지기관 ‘라파엘의 집’을 찾아 자신의 전재산인 12평짜리 아파트를 사후에 기증하겠다고 제의해 정상인들을 부끄럽게 만든 적이 있다. 서울지하철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승객들로부터 받은 푼돈을 모아 15년만에 장만한 아파트다. 서울대병원에 사후 시신기증까지 약속한 그는 최근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남몰래 하려던 일이 들켜서 오히려 부끄럽다”고 말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 전재산 기증 맹인 악사

매달 월급에서 1천원씩을 떼내 시각장애인 1백6명에게 개안수술을 시켜준 어느 회사의 ‘이삭줍기’회원 8백58명, 홀로 사는 노인을 양어머니 삼아 19년째 박봉을 쪼개가며 봉양해오고 있는 소방관, 버려진 신발을 틈틈이 정성껏 수선해 무의탁 노인 5백명에게 전달한 3인의 구두수선공…. 그런가 하면 이름없는 보통 할머니들의 장학금기탁도 줄을 이었다. 배우지 못한 한 때문일까. 그들은 행상 노점상 삯바느질 구멍가게 김밥장사 젓갈장사 화장실청소로 평생을 두고 힘들게 모은 재산을 적게는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50억원까지 쾌척하고 있다.

좋은 일을 한 결과로 얻는 반대급부는 행복감이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삶과 주위를 한결 기름지게 가꾸는 밑거름도 된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어도 실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전화 한 통화면 시 군 구나 동사무소의 이웃돕기 담당자와 금방 연결이 된다. 소년소녀 가장에게 반찬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불우이웃 노인에게 목욕이나 이발을 시켜줄 수도 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작은 정성을 놓고 올 수도 있다. 형편이좀나은분이라면 적당한 복지기관을 골라 상당액을 기탁할수도있을것이다.

▼ 그들이 있어 희망이…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라야 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던가. 나누고 베푸는 삶의 모범을 보이는 이의 대다수는 그 스스로도 불운한 인생역정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가진 것이 많아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게 갖고도 더불어 나눌 수 있을 때 인간의 정신세계는 더욱 빛난다.

날로 세상이 각박해지고 인정이 메말라 간다는 개탄의 소리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위대한 보통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단이기주의가 시도 때도 없이 격돌하고 떡값 정치인들이 흙탕물을 튀겨도 이런 훈훈한 이웃사랑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막가는 사회일 수 없다. 희망이 있다. 자학할 이유가 없다.

남중구(안보통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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