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 ⑨]멕시코 한인1세대집 「초사」

입력 1998-03-10 19:01수정 2009-09-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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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시티에서 비행기 기수를 동쪽으로 돌려 1시간반 남짓 가면 멕시코 동부해안의 한적한 휴양지 메리다시가 보인다.

공항을 뒤로한 채 시내 중심부를 지나 북쪽으로 뚫린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20분간 올라가면 이젠 사양의 길에 접어든 ‘애니깽’농장의 영화(榮華)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곳은 1905년 멕시코에 첫 발을 내디딘 한인들의 애환이 서린 농장생활의 중심무대였다. 4년간 계약노동을 마친 한인들은 이곳에서 멕시코내 다른 지역은 물론 미국이나 쿠바로 진출했던 것이다.

이제 과거의 대규모 농장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드문드문 과거의 ‘애니깽’밭이 명맥을 이어갈 뿐 대부분은 초지나 과수원 등으로 바뀌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선박항해의 필수용품이었던 로프의 주원료로 쓰인 이 곳의 ‘애니깽’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수요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신소재’ 나일론의 등장으로 ‘애니깽’생산은 철퇴를 맞고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때마침 고속도로 오른쪽에 위치한 과거의 ‘애니깽’ 가공공장은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20년대 중반에 세워진 이 공장은 아직 가동을 멈춘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매일같이 뿜어대던 공장의 굴뚝 연기가 사라진지 오래”라는게 공장관계자의 설명이다.

작업 공정은 크게 인부들이 베어온 ‘애니깽’을 컨베이어 벨트로 옮긴 뒤 껍질을 으깨어 실타래로 만들면 이를 건조대에 널어 말리는 3단계로 나눠져 있었다.

한편 ‘애니깽’공장에 이웃한 인근 마을에는 아직도 당시 한인1세대들이 머물었던 가옥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멕시코어로 ‘초사’라고 불리는 이 농막은 묘하게도 우리말의 초가(草家)와 발음이 비슷했다. 어른 키 정도 높이의 ‘초사’의 지붕은 시원스럽게 야자수잎으로 덮여 있었다.

내부에는 땅의 복사열을 피하기 위해 그물 ‘해먹’이 매달려 있었으며 대부분 이 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이미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진흙벽대신 시멘트로 덧칠을 한 곳이 많았지만 아직도 예전의 진흙벽이 남아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메리다(멕시코)〓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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