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홋카이도.문.답]<2>가슴에 눈을 품고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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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6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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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나에게는 눈을 맞는 방법이 꽤 여럿 있다.

모자나 우산을 쓰지 않고 그냥 머리에 흰 눈이 고스란히 내려앉게 맞는 방법이 그 가운데 하나인데, 눈을 실컷 맞고 실내에 들어가서도 그 눈을 털지 않는 것이다. 그 눈이 그대로 녹아 얼굴에, 그리고 목덜미에 고스란히 흘러내리는 과정을 느끼는 것.

그것은 눈의 전부를 느끼는 방법 같아서 온전히 나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종종 그렇게 하곤 한다. 눈이 다 녹아 거울을 봤을 때 푹 주저앉은 머리칼이 만들어내는 바보스러움도 나는 꽤 사랑한다.

홋카이도에 도착하면 어떻게 이토록 많은 눈들이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싶다가도, 그곳 사람들이 그 눈들과 함께 지혜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질문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확실히, 맞서서 대응한다는 느낌보다는 껴안고 음미한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1년 동안 6미터의 눈이 내린다는 삿포로는 겨울 동안 쉼없이 눈이 내린다. 잠시 먼지처럼 눈이 내리기도 하며,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내려 쌓이기도 한다.

이 역시도 나의 취향이겠지만 여러 눈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눈은 뭐니뭐니해도 ‘초속 5cm’로 내리는 눈이다. 그것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하고도 닮아서 사람의 기분을 몰캉하게 찌르고 반응하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초속 5cm의 속도라는 것은 자연이 사람에게 가닿는 속도이기도 할 것이며, 사람이 사람에게 닿는 속도이기도 할 것이며, 또 시(詩)가 인간의 심장에 꽂혀 반응을 보이는 속도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내리는 눈의 인간적인 속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햇살이 유난한 곳은 햇살을 부르는 이름들이 유별스레 많기 마련이고 바람이 많은 곳은 바람을 일컫는 이름들이 유별스레 많은 법이다.

가루눈(코나유키), 가랑눈(쯔부유키), 솜눈(와타유키), 함박눈(모란꽃눈, 보탄유키), 진눈깨비(미죠레유키), 싸라기눈(아라레), 첫눈(하쯔유키), 그 겨울에 내린 마지막 눈(와스레유키), 따뜻한 날씨에 내리는 눈(타마유키), 재처럼 색깔을 머금고 내리는 눈(하이유키), 녹으면서 내리는 눈(모찌유키), 그보다 더 녹으면서 내리는 눈(베타유키), 거의 비처럼 내리는 눈(미즈유키) 등등.

그만큼 눈의 상태와 모습을 나타내는 말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이 눈의 천국이며 눈을 삶의 중심에 쌓아 두고 있음을 증명한다. 태초에 신은 처음 눈을 만들어 제일 먼저 홋카이도에다 뿌린 것은 아닐까. 이런 농담 같은 질문은 홋카이도라서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는 지금껏 잘못 살아온 삶의 부분들을 박박 지워낼 수 있을 듯한 기분마저 든다. 순백의 시간들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새하얗게 세탁한다. 섬세하게 눈을 바라보고, 눈을 분류하고, 그리고도 눈을 숭배하는 이 사람들을 나는 사랑한다.

누구나 ‘그곳’에 가면 꿈속에 있다는 또 하나의 꿈을 꾼다. 지금 내가, ‘어디’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한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와 있으면서도 어디인지를 모르는 그곳은.

시인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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