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조계종, 참회 정진의 모습 보이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4일 03시 00분


승려들이 담배연기 자욱한 호텔방에서 술병을 기울이며 억대 도박판을 벌이는 동영상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燃燈)을 내건 불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세속(世俗)의 먼지를 털어내고 선방(禪房)에서 수행 정진하는 많은 불제자(佛弟子)들의 마음도 상처를 입었다. 불법(佛法)을 닦아 깨달음을 이루라며 맡긴 시줏돈이 승려들의 불법(不法) 도박판에 판돈으로 쓰인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사건이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시줏밥 먹을 자격이 없다. 제가 대신 참회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승 총무원장도 “지난날의 과오와 안일함에 대해 자성하며 종단 전체가 참회하고 자숙하는 모습으로 정진해 가겠다”는 참회문을 발표했다. 그는 100일 동안 108배(拜) 참회 정진을 시작했다. 참회는 깊고 넓고 아파야 한다.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 계율과 종헌종법에 따른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주지 자리를 둘러싼 불교계의 파벌 싸움이 있다. 총림(叢林)인 백양사 주지 자리를 놓고 갈등을 겪던 와중에 한쪽 파벌이 반대쪽 파벌 승려들의 도박 현장을 폐쇄회로(CC)TV로 촬영해 유출했다고 한다. 명산대찰의 주지 자리를 놓고 벌이던 난투극이 한동안 사라졌나 했더니 이제는 몰래 카메라가 등장했다. 불교에서 ‘삼독(三毒)’으로 경계하는 탐(貪·욕심) 진(瞋·노여움) 치(癡·어리석음)를 낱낱이 드러낸 추태다.

조계종은 지난해 초 ‘자정과 쇄신을 위한 결사운동’을 선언했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본부장 도법 스님은 올해 2월 종단의 금권·계파정치, 호화생활, 재정 및 인사 불투명성, 엄정하지 못한 법집행을 지적하는 서신을 작성했다. 어디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진정한 참회와 정진을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성철 스님은 암자 주변에 철조망을 쳐놓고 잠잘 때도 눕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8년 동안 했다. 아끼는 제자들에게 “밥도둑놈아, 밥값 내놔라”라고 호통을 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았다. 법정 스님은 홀로 수행하던 암자에서 무더운 여름 한낮에 날카로운 칼로 대나무를 깎았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였다.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혹독하게 정진하는 수행자가 혼탁한 세상에 맑은 울림을 준다.
#조계종#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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