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전산망 사고 한달… 서울 IT센터 복구현장 3주간 지켜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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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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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고 중징계 어느 선까지” 악몽 계속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IT 센터 정문 옆에 출입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차단용 바
(bar)가 내려져 있다. 전선망 마비 사건 발생 한달만에 다시 찾아간 IT센터는 예전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IT 센터 정문 옆에 출입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차단용 바 (bar)가 내려져 있다. 전선망 마비 사건 발생 한달만에 다시 찾아간 IT센터는 예전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정보기술(IT)센터는 한 달 전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농협의 금융전산망이 마비된 지난달 12일 ‘패닉’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기자가 사고 발생 직후 3주 가까이 전산 복구 현장을 지키면서 느꼈던 IT센터 직원들의 피곤함과 초조함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상 최악의 금융전산사고로 한 달간 농협 임직원은 지옥과 천당을 오갔고, 농협 브랜드는 치명타를 입었다. 하지만 금융권 전반에 IT 보안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 지옥 같았던 한 달

검찰의 현장조사가 시작된 지난달 14일 밤 IT센터 직원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역력했다. 며칠째 갈아입지 못해 꼬깃꼬깃해진 와이셔츠 차림의 한 직원은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며 기자의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검찰로부터 ‘내부자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전산망 복구에 하루 24시간을 쏟아 부어야 할 상황에서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하는 서버관리 담당 직원들에게는 더욱 힘든 시간이었다. IT센터의 한 직원은 당시 기자에게 “농협 안에서 ‘범인’, ‘내부자’ 같은 단어는 금기어”라며 “복구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범인이 누구냐는 2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내부자 소행에 무게를 두고 취재를 하던 기자에게 복구 작업에 참여하던 한 IT센터 직원이 지난달 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복구가 아니라 우리에게 쏠린 사회 분위기예요. 중요한 건 금융시스템 안정화인데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고 잘잘못만 따지려 하니 미칠 지경이에요.” IT센터 직원들이 농협 내부에서조차 배신자로 ‘왕따’ 취급당하는 상황을 무척 안타까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고 발생 21일 만인 이달 3일 검찰이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자 IT센터 직원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끝나지 않은 악몽

북한 소행이라는 검찰 발표가 나왔지만 농협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12일까지 농협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현장 조사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농협 관계자는 “겉으론 평온해 보일지 모르지만 금감원 제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고위 간부는 물론이고 팀장과 과장급에게까지 책임을 물어 사상 최대 규모의 중징계 제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보안관리를 허술하게 해 사고를 자초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서비스도 100% 정상화된 것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대(對)고객서비스는 완전 복구됐지만 카드 할부기간을 바꾸는 등 결제조건 변경은 여전히 ‘복구 중’이다. 검찰이 북한을 지목했지만 “그게 말이 되냐. 농협 내부자가 아니라면 저지를 수 없는 사고”라는 일각의 주장도 부담스럽다.

다만 농협의 전산사고가 금융권 전반의 IT 보안 인식을 대폭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농협은 국내 최고 수준의 전산보안시스템을 구축하기로 발표했다. 현대캐피탈은 보안 관련 예산을 금융권 최고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했으며 비씨카드도 정보보안실을 신설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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