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의회 연설이 진행됐던 미 워싱턴 연방의사당에 각료 한 사람 보이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은 미 주요 정치인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워싱턴의 최대 정치 행사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의 한 장관이 이러한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왜일까.
4일(현지 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주인공은 더그 콜린스 보훈장관이다. 그는 이날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로 지명됐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 연설 도중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대통령직 승계 순위 17위인 그가 미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대통령이 연설 등을 목적으로 국회를 방문할 경우 내각 관료 중 한 명을 지정 생존자로 정해 국회가 아닌 다른 곳에 대기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의회에 폭탄 테러 등 유사시 국무 수행을 이어갈 인물을 선정해 두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지정 생존자’는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정 생존자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1년 9·11 테러 탓이다. 이전까지 미국의 지정 생존자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에너지장관이었던 고(故) 빌 리처드슨은 2000년에 지정 생존자로 지명됐다. 그는 당시 아내와 함께 주말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1997년 클린턴 행정부의 지정 생존자였던 댄 글릭먼 미 농무장관은 딸이 사는 뉴욕에 머물렀다. 그는 이 때의 경험 관련 “아무도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9·11 테러 발생 이후 조지 W 부시 정부 법무장관이었던 알베르토 곤잘레스는 지정 생존자의 상황이 변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2007년 부시 대통령의 연방 연설이 있을 당시 지정 생존자였던 그는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가서 비행기를 탄 채 대통령의 연설을 시청했다. 그는 각종 메모와 지침이 가득 찬 두꺼운 바인더와 함께 비행기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한편 특정 각료가 대통령의 의회 연설 등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교육장관이었던 테렐 벨이었다. 벨이 지정 생존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후에야 밝혀졌다. AP통신은 “최근에는 TV영상 등을 통해 지정 생존자가 누구인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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