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멕시코·중국에 ‘관세 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도 새로운 관세를 “확실히(definitely)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음 관세 부과 대상국과 관련해 EU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확실하다”며 “구체적 타임라인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곧 (부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EU는) 우리를 매우 이용했다. 선을 넘었다”라며 “그들이 한 짓은 잔혹 행위(atrocity)”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EU가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을 충분히 수입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유럽에서 수백만 대의 차와 엄청난 양의 식량 등 모든 것을 사 오는데,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미국에서) 사 가지 않는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에도 “절대적으로” EU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다만 EU 회원국이 아닌 영국에는 발언의 수위를 낮췄다. 그는 영국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라면서도 “(영국은) 선을 넘었지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나는 아주 잘 지낸다”라고도 덧붙였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사진)이 1일(현지 시간)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중국에는 기존 관세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집권 2기 ‘통상전쟁’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오른쪽 사진)는 “미국산 제품에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하겠다”고 했고,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결코 (미국에)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웨스트팜비치·오타와=AP 뉴시스
앞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4일부터 이웃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중국에 추가 관세 10%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맞대응에 나섰고 중국이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히며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EU 역시 관세 조치가 EU에까지 확대될 경우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2일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EU 상품에 부당하거나 자의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모든 무역 파트너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EU와 미국의 무역 및 투자 규모는 세계 최대로, (관세 조치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라고 밝혔다.
유럽 각국은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놨다. 프랑스의 마크 페라치 산업부 장관은 EU 집행위원회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이날 현지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EU에 대한 미국의 관세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대응은 (미국 쪽에) 중요한 상품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며 “협상에서 확실한 위협이 되도록 미국 경제에 통렬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라고도 언급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8일(현지시각) 베를린 총리 공관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국경은 무력으로 변경할 수 없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그린란드 매입 야욕을 비판했다. 2025.01.09 AP뉴시스
EU의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날 유사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는 영국에서 스타머 총리와 회동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세계를 관세 장벽으로 분열시키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EU는 강력한 경제권으로 자체적인 대응 옵션이 있다”고 했다. 다만 외르크 쿠키스 독일 재무장관은 “처음 나온 결정에 패닉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이는 협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봐야 한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타머 영국 총리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이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들과 함께 유럽 재무장과 군사력 증강에 따르는 비용 분담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2일 스타머 총리가 런던 근교의 별장에서 숄츠 총리를 만나 “유럽 전역의 국방물자 생산을 확대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EU가 유럽대륙의 방위력을 확장하기 위한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의 문호를 비회원국인 영국과 노르웨이에도 개방해 러시아와 미국의 위협에 대비하려는 취지라고 FT는 분석했다. EU 관계자들은 “EU의 일원이 아닌 NATO 회원국까지 포함해 더 넓은 협력체를 구성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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