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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아베 국장’ 정치 활용하려는 기시다… 국민들은 “반대” 많아[글로벌 포커스]

입력 2022-08-13 03:00업데이트 2022-08-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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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격 사망 한달… 日 국장 놓고 논란
日 역대 국장 1967년 단 한번뿐
아베 ‘가정연합 의혹’에 급반전
외교 성과 나올지도 의문
지난달 12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가족장이 열린 도쿄 조조지(增上寺) 경내에 마련된 빈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달 22일 야당인 사민당 관계자를 비롯해 아베 전 총리 국장(國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도쿄=AP 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향후 여러 기회를 통해 정중하게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0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 계획보다 1개월쯤 앞당겨 개각을 단행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 단행 개각’이라며 적극 홍보할 참이었다. 하지만 모두발언이 끝나자 취재진의 질문은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모아졌다.

‘총격 한 달이 지나면서 국장 반대 의견이 많아졌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시다 총리는 “다양한 업적을 남긴 아베 전 총리는 국내외로부터 높은 평가와 폭넓은 조의를 받고 있다”며 “국가 공식 행사로 국장을 개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아베 전 총리 국장은 다음 달 27일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달 8일 총격을 받아 아베 전 총리가 숨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장례 형식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신격화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고조됐던 초기 추모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 주요 언론 여론조사에서는 ‘국장 찬성’보다 ‘반대’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도쿄 곳곳에서는 국장 반대 시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아베 전 총리 국장이 계륵처럼 돼 가는 분위기에 집권 자민당 정부는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아베파(派) 배려 전격 국장 결정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의견이 분분한 데에는 일본의 장례 풍습도 일조했다. 사망 후 대체로 사흘, 길어도 일주일 안에 발인하고 장례를 마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정치인 같은 사회 고위급 인사나 유명인은 보통 장례 의식을 두 번 치른다. 가족장 후 짧으면 2∼3주 뒤, 길면 몇 개월 뒤 오와카레카이(お別れ會)라 부르는 고별식이나 정부 정당 회사 학교 등의 주최로 치르는 별도 장례식이 그것이다. 일본 가족장은 한국처럼 고인이나 상주의 친척, 동료, 동창 등이 문상하며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족이나 정말로 친한 몇 명이 조촐하게 장례를 지낸다.

일본에 국장 제도가 처음 등장한 건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인 1800년대 후반이다. 1926년에는 국장령(令)을 제정해 왕가 인물,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 등은 국장을 치를 수 있게 규정했다. 국장을 치를 때는 관공서 학교 등의 문을 닫고 전 국민이 상복을 입도록 하는 강제 조항도 국장령에 들어가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일본을 접수한 뒤 국장령이 효력을 상실하면서 국장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는 사라졌다. 하지만 국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미일 안보조약 체결 주역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가 1967년 사망했을 때 일본 정부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국장을 거행했다. 전후(戰後) 유일무이한 전직 총리 국장이었다.

요시다 전 총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전직 총리 장례식은 정부-자민당 합동장으로 거행됐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장례식 역시 합동장이었다. 약 1억9000만 엔(약 18억 원)의 장례 비용은 정부와 자민당이 절반씩 부담했다.

당초 아베 전 총리 가족장이 끝난 뒤 추가 장례식은 이런 관례대로 정부-자민당 합동장이 검토됐다. 요시다 전 총리를 제외하면 선례도 없을뿐더러 국장령이 실효(失效)된 뒤 관련 규정이 전무했고, 정부가 장례 비용 전액을 대는 것에 대한 국민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지금 시대에 국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2일 국장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큰 공적을 쌓은 아베 전 총리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고 싶은 뜻이 강했다.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에 대한 배려로도 해석된다”고 풀이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직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고 추모 열기도 달아오르면서 ‘국장을 치를 만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아베 전 총리의 해외 지명도를 활용해 이른바 ‘장례 외교’를 펼쳐 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일본 정부는 외무성에 30명 규모의 국장 준비 사무국을 설치하고 세계 각국 조문단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 ‘가정연합 커넥션’에 추모 분위기 식어
하지만 이후 국장 찬성 분위기는 반전됐다. 아베 전 총리 저격범 야마가미 데쓰야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에 빠진 모친에게 원한이 있었는데 아베 전 총리가 가정연합과 관계있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사실이 보도되면서다. 민영방송과 주간지가 흥미 위주로 다루던 ‘아베-가정연합 커넥션’은 주요 일간지와 NHK 방송이 집중 보도하며 ‘자민당-가정연합 연루 의혹’으로 번지더니 순식간에 ‘가정연합 정국(政局)’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13일 가정연합 피해자 등을 변호하는 ‘전국 레이칸쇼호(靈感商法) 변호사 연락회’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정연합 측이 조상의 악한 기운을 없애야 한다면서 성경이나 항아리, 모형 탑 구매를 강권하다시피 해 거액을 헌금하도록 하는 레이칸쇼호로 불리는 사기에 가까운 상술을 폈다고 주장했다.

주요 언론이 이 이슈를 파고들면서 아베 전 총리와 가정연합의 관계가 하나둘 드러났다. 일본 최대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아베 전 총리가 야당 시절인 2010년대 초반 도쿄 인근에서 등산하며 자주 어울렸던 통일교 간부가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결정적 도움을 줬다’고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1960년대부터 문선명 당시 통일교 총재와 깊은 관계였다는 사실도 새삼 조명됐다. 자민당 주요 의원과 아베파 소속 강경 보수 의원, 아베 전 총리 비서 출신 후보들이 가정연합에서 정치 헌금을 받거나 신자들의 ‘조직 표’를 얻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베 전 총리 추모 열기는 식어갔다. 아베 전 총리와 가정연합의 관계가 부담이 돼 기시다 내각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불과 한 달 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자 ‘황금의 3년이 열릴 것’이라며 개헌을 기정사실화하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개각까지 단행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지만 싸늘한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각 이틀 뒤인 12일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51%였다. 같은 신문 조사로는 지난해 10월 기시다 총리 취임 이후 가장 낮았다. ‘개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45%로 절반에 못 미쳤다.

특히 ‘가정연합과의 관계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55%였다. 기시다 총리는 개각 전 “입각한 사람들과 가정연합의 관계를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파벌 균형을 위한 자리 배분 결과 하기우다 고이치(경제산업상→자민당 정책조정회장), 기시 노부오(방위상→총리 보좌관)같이 가정연합 연루 의혹 인사가 요직을 맡거나 배려를 받았다. 기시다 총리 측은 “개각으로 여론이 조금 달라질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랐다”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 ‘국장 반대’ 가처분 소송까지
아베 전 총리 국장을 반대하는 시민사회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대학교수, 언론인을 비롯해 231명이 참여한 ‘아베 국장 강행을 용납하지 않는 실행위원회’는 최근 도쿄지법에 ‘국장 실시 및 국비 지출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일원으로 실행위에 참여한 후지타 다카카게 씨는 “국장을 강행하면 헌법이 규정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국장 거행을 위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데 국민 혈세를 쓰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는 편지가 연일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11일 도쿄지법이 가처분 각하 결정을 내리자 실행위는 곧바로 도쿄고법에 항고했고 “전국 각 지법에도 가처분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선례가 한 번뿐인 국장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이다. 내각부는 9일 야당 질문에 “국민에게 상복을 입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금 시대에 국민에게 상복을 입게 할지 말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학교 현장에서 국장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논란이다. 이미 7월 아베 전 총리 가족장 당시 도쿄 센다이 후쿠오카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청)에서 각급 학교에 조기 게양을 요청한 것을 놓고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나카지마 데쓰히코 나고야대 명예교수는 당시 아사히신문에 “(조기 게양 요청은) 말만 요청이지 강제나 마찬가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뒤흔드는 행위”라며 “아베 전 총리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판단을 학생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민주 사회 교육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대외 갈등 해소의 장(場) 될까
국장 예정일까지 한 달 넘게 남은 상황에서 ‘찬반 갈등’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자민당은 더욱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각료 19명 중 14명을 교체하는 대규모 개각을 했음에도 세간의 관심은 새 내각 정책보다 ‘새 각료는 가정연합과 관계없는지’ ‘아베 전 총리 국장은 제대로 거행될지’에 쏠린다. 자민당 한 중진 의원은 “이런 분위기라면 9월엔 국장 반대 의견이 70%는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지통신은 자민당 보수파를 중심으로 “국장 찬반 갈등이 거듭되면서 아베 전 총리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일본 정치인 가운데 해외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아베 전 총리 국장을 통해 장례 외교를 펼칠 계획인 일본 정부는 해외 VIP를 맞이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등이 국장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다. 한국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주축으로 한 대통령 특사 성격의 조문단을 보낼 방침이다.

아베 전 총리 국장이 일본 외교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꾀하는 한국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기존 태도를 고수하는 일본이 국장을 통해 얼마나 유화적 태도를 취할지 회의적이다.

중국과의 역내 갈등이 국장 기간 부상할 가능성도 크다. 아베 전 총리 국장 이틀 뒤인 9월 29일은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일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대만 정부에도 국장 초청장을 보냈다. 대만 정부는 대표단을 보낼 예정이다. 대만 문제 간섭을 이유로 최근 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당일 취소한 중국이 아무리 국장이라고 해도 대만 정부 대표단과 같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참석을 두고 일본 정부가 “푸틴 대통령은 입국 금지 대상”이라고 밝히자, 러시아 정부는 “참석할 생각도 없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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