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값 반년새 5배… ‘73% 인플레’에 신음 하는 터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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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복합위기’ 현장을 가다]‘세계 최고 인플레’ 덮친 터키
터키 高물가 현장 르포
“7500원에 보던 장, 이젠 3만7500원… 내일은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몰라”
당국, 저금리 고집… 인플레 부채질, 청년들 “희망 없다” 해외탈출 원해

“올리브 값도 치솟아”10일(현지 시간) 이스탄불 주마 픈드크자데 파자르 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에르도안 벨칸 씨가 
“2월 말 10kg에 250리라(약 1만8750원)였던 올리브가 지금은 375리라(약 2만8120원)”라고 설명하고 있다. 터키는
 5월 물가상승률이 73.5%에 달했다.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올리브 값도 치솟아”10일(현지 시간) 이스탄불 주마 픈드크자데 파자르 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에르도안 벨칸 씨가 “2월 말 10kg에 250리라(약 1만8750원)였던 올리브가 지금은 375리라(약 2만8120원)”라고 설명하고 있다. 터키는 5월 물가상승률이 73.5%에 달했다.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며칠간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산 계란 오이 소시지 가격이 총 100리라(약 7500원)에서 500리라(약 3만7500원)로 5배로 올랐어요. 불과 반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믿기시나요.”

11일(현지 시간) 터키(튀르키예) 이스탄불 외곽의 에센레르 지역에 사는 이미라 티피티크(53), 알리 오스만 티피티크 씨(66) 부부는 기자에게 “내일 어떤 제품이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른다”며 치솟는 물가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터키는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3.5%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올해 처음 국가부도를 선언한 스리랑카도 물가상승률은 45.3%다.

티피티크 씨 부부는 터키인들 밥상에 올라가는 주요 식료품 가격이 1년 사이 2∼6배로 뛰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75리라(약 1만3000원)였던 레몬 25kg은 6배 가까이로 치솟아 1016리라(약 7만5900원)에 팔린다. 올리브 1kg 가격도 25리라(약 1870원)에서 3배로 오른 75리라(약 5600원)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당 주인은 “반년 전 7000리라(약 52만3000원)였던 월 전기요금이 지금은 1만9000리라(약 142만 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에 대처하겠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계속 내리다가 리라화 가치가 하락해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졌다. 지난해 12월 이미 물가상승률이 36.08%에 달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난과 이에 따른 고유가, 원자재·곡물 가격 폭등이라는 글로벌 복합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과 긴축으로 대처한 반면 터키는 관광 수입 급감으로 위축된 경기를 살리겠다며 저금리 기조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리라화 가치가 더욱 폭락해 ‘70% 인플레이션’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식료품뿐 아니라 약값도 지난해에 비해 37% 올랐다고 약사 아이셰 페이한 튀르케르 씨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터키 여성은 월급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해 “희망이 없다”며 해외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高물가 터키, 약값 통제해도 37% 급등… 월세 1년새 3번 올려”


‘세계 최고 인플레이션’ 터키 르포… 오믈렛 10배 뛰고 월세 2배로 올라
음식 찾아 쓰레기 뒤지는 사람도… 찻집 사장 “손님 작년보다 70% 감소”
약국 약사 “돈 없다기에 외상으로 줘… 정부 “코로나 경기부양” 저금리 고수
리라화 가치 폭락… 인플레 부추겨


11일(현지 시간) 터키(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 도심에서 만난 학원강사 아슬란 치라이 씨(38·여)는 기자가 경제난에 관한 질문을 하려 하자 “대답을 하려다 울지도 모르겠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지난해 3리라(약 225원)였던 오믈렛 가격이 현재 30리라(약 2250원)라고 했다. 3000리라(약 22만5000원)였던 주택의 월 임차료도 6000리라(약 45만 원)로 2배 올랐다. “(식료품값 폭등을 감당하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스탄불에서 19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아이셰 페이한 튀르케르 씨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약값도 전년 대비 37% 올랐다. 서민들에게는 치명타”라고 했다. 그는 “최근 열이 심하게 나는 아이가 찾아와 돈이 없다기에 약사 생활 처음 약을 ‘외상’으로 줬다”고 전했다.
○ 메뉴판엔 가격 수정용 견출지 덕지덕지
터키 곳곳에서 물가상승률이 70%를 넘은 살인적 고물가의 실상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 외곽의 에센레르 지역에서 20년째 찻집을 운영 중인 이미라 티피티크 씨(53)는 “경제난으로 작년보다 손님이 70% 줄었는데 월세는 1년간 두 번이나 올랐다. 그런데도 건물 주인이 또 올려 달라고 한다”며 세 번째 인상 요구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임차료 외에 전기요금, 원재료 가격 등도 치솟아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티피티크 씨는 반년 전 5kg짜리 찻잎을 225리라(약 1만6800원)에 사들여 차 한 잔에 2.5리라(약 187원)에 판매했다. 최근 찻잎 가격은 2배가 넘는 500리라(약 3만7400원)로 올랐다. 같은 기간 그는 차 한 잔 가격을 0.5리라(약 37원)만 인상했다. 재료값 인상분을 그대로 반영하면 서민이 대부분인 고객들이 떨어져나갈 것이 분명한 탓이다. 그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차 소비부터 줄이고 있다. 장사가 이렇게 안 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기자가 찾은 한 식당의 메뉴판 곳곳에는 견출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음식값이 오를 때마다 새 가격을 써 붙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아예 메뉴판을 없애고 가게 한쪽에 메모판을 건 식당도 있었다.

날마다 뛰는 물가… “가격표 바꿀 직원 모집” 터키의 한 매장에 ‘가격표 바꾸는 업무를 담당할 직원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트위터 캡처
날마다 뛰는 물가… “가격표 바꿀 직원 모집” 터키의 한 매장에 ‘가격표 바꾸는 업무를 담당할 직원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트위터 캡처
현지 소셜미디어에서는 ‘가격표를 수정할 직원을 뽑는다’는 문구를 내건 한 가게의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비꼬려는 의도”라는 반응과 “그만큼 가격 인상이 빈번하니 실제로 필요해서 뽑으려는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 “이곳엔 희망이 없다. 떠나고 싶다”
현지에서 만난 20, 30대 젊은층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방치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20대 여성은 월급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프리랜서로 몰래 ‘투잡’을 뛰고 있다며 “터키를 떠나고 싶다. 이곳에는 희망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해 1월 48.69%였다. 불과 4개월 만인 지난달 73.5%로 치솟았다. 기름값 역시 3월 L당 18.2달러에서 이달 20일 27.6달러로 올랐다.

초유의 고물가 상황은 글로벌 공급난과 이로 인한 에너지·원자재·곡물 가격 폭등 등 글로벌 복합위기, 세계 각국의 대처와 반대로 가는 터키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겹쳐 더욱 악화되고 있다. 터키는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기준금리를 인하해 당시 19%였던 금리가 14%까지 떨어졌다. 금리를 낮추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지만 리라화 가치가 떨어지고 수입 물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된다. 메흐메트 파티흐 차크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인플레이션은 터키만의 현상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고물가#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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