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소리 안들려 행복해요”… 아프간 네살배기, 한국서 첫 설맞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6일 0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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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아프간 탈출 특별기여자들… 최근 임시시설 나와 제2 인생 시작
“가족 보금자리 생겼다” 함박웃음, “한국 덕분에 소중한 사람 안 잃어
아이들, 이 사회에 유용한 사람되길”… “이번 설엔 월미도로 가족 여행”
사회보장급여 등 정착지원법 시행

24일 밤 인천 서구의 한 놀이터에서 하셰미 낭얄라이 씨(왼쪽)와 아내가 아이들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을 극적으로 탈출한 하셰미 씨 가족은 국내 정착 교육을 마치고 이달 12일부터 인천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공원과 마트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며 “설 연휴 때는 월미도에 놀러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4일 밤 인천 서구의 한 놀이터에서 하셰미 낭얄라이 씨(왼쪽)와 아내가 아이들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을 극적으로 탈출한 하셰미 씨 가족은 국내 정착 교육을 마치고 이달 12일부터 인천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공원과 마트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며 “설 연휴 때는 월미도에 놀러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빠. 여기는 총소리가 안 들려서 너무 행복해요.”

201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총성의 공포는 일상이었다. 하셰미 낭얄라이 씨(33)는 공원을 걷던 중 딸의 말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인천은 월미도가 유명하대. 이번 휴가(설) 때 월미도로 놀러가자!”

하셰미 씨는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극적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왔다. 충북 진천과 전남 여수 임시생활시설에서 정착 교육을 받은 그의 가족은 이달 12일 퇴소해 인천 서구에 터를 잡고 제2의 삶을 시작했다. 23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하셰미 씨는 “가족들과 공원에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 “한국 덕분에 소중한 사람 잃지 않았다”
현재 하셰미 씨는 정부 지원으로 임차한 인천 서구의 방 2개짜리 빌라에서 아내와 다섯 살 아들, 네 살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집 내부는 별다른 가구가 없어 휑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드디어 가족만의 보금자리가 생겼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인천 정착 후 하셰미 씨는 대중교통을 익히며 직장을 다녔고, 아내는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다. 두 아이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섞여 놀며 한국 사회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하셰미 씨는 “아프간에 있었다면 탈레반이 우리를 체포해 ‘왜 외국인과 함께 일했냐’고 추궁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희망에 차 있다.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19년 지기인 자마니 타이브 씨(31)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아프간 한국직업훈련원에서 근무하며 한국과 연을 맺었다. 직업훈련원은 한국이 아프간 재건을 돕기 위해 현지인들을 교육하던 곳. 하셰미 씨는 4년간 전기 분야를, 자마니 씨는 3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아내, 세 딸과 한국에 온 자마니 씨는 생계를 위해 가족보다 2주 먼저 임시생활시설을 나왔다.

이들은 17일부터 인천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 9시간 이상 제품을 포장하는 일이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고되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마니 씨는 “당장 가진 돈이 많지 않은 만큼 가족을 위해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한국 덕분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았고 새 삶이 시작됐다. 감사하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첫 설을 맞아 두 가족은 인천 월미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 “아프간에 남은 가족들, 안전하기만 바랄 뿐”
한국 생활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아프간에 남은 가족만 생각하면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진다. 하셰미 씨는 형제자매 셋을, 자마니 씨는 어머니와 네 형제자매를 두고 한국에 왔다. 자마니 씨는 “정부군과 정보당국에서 일했던 두 형제는 탈레반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다. 그저 안전하기만을 빌고 있다”고 말했다. 하셰미 씨도 “아프간에선 일을 해도 돈이 다 탈레반으로 간다”며 “돈을 벌면 월급의 반은 아프간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싶다”고 했다.

중동과 이슬람교에 대한 한국 사회 일각의 편견과 부정적인 여론도 두렵다. 자마니 씨는 “아프간에서 종종 테러가 일어나긴 하지만 모든 이슬람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라며 “1, 2년 정도 함께 지내면서 우리도 가족이 있는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편견이 있는 분들도) 점차 마음을 열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법무부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재한외국인 처우기본법 개정안을 25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은 난민인정자와 동일하게 한국 국민 수준의 사회보장급여와 초중등의무교육혜택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인천=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아프가니스탄 탈출#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정착지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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