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국제

“예배가 패닉으로 변했다”… 줌에 생중계된 11시간 인질극

입력 2022-01-18 03:00업데이트 2022-01-18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무장한 英남성 “美, 유대인만 관심”
여성 알카에다 과학자 수감된 교도소 근처 유대교 예배당 침입
FBI 협상팀에 석방요구하며 대치
인질범 사망… 신도 등 4명은 무사
15일 인질극이 벌어진 미국 텍사스주 콜리빌의 유대교 예배당 밖에서 경찰 특수기동대 대원들이 풀려난 인질 남성(위쪽 사진 가운데)을 호위하고 있다. 11시간 동안 이어진 인질극 끝에 범인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인질 4명은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16일에도 경찰이 사건이 난 예배당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아래쪽 사진). 콜리빌=AP 뉴시스
15일 오전 미국 텍사스주 콜리빌 유대교 예배당 안에는 5명이 있었다. 한 남성이 랍비(유대교 성직자) 등 4명을 인질로 잡았다. 몇 분 전 말리크 아크람(44)이라는 불청객이 “여기, 쉼터 맞느냐”며 예배당에 노크를 하자 랍비인 찰스 시트런워커가 그를 맞아 차 한 잔을 내줬다. 마주 앉은 아크람은 이내 총을 꺼내 보이며 정체를 드러냈다. “나는 무장을 했다. (나는) 죽게 될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영국 거주자인 아크람은 지난해 12월 29일 뉴욕 공항으로 입국해 텍사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미국인 살해 시도 혐의로 86년형을 선고받은 파키스탄 여성 과학자 아피아 시디퀴가 수감된 교도소가 있다. 아크람은 ‘레이디 알카에다’로 불리는 이 여성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교도소에서 가장 가까운 유대교 예배당을 찾아온 것이었다.

예배당은 한산했다. 랍비와 당뇨를 앓는 노인 등 신도 3명뿐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줌(Zoom)으로 화상 예배를 하던 중이었다. 이날 인질극은 줌에 접속해 있던 신도 등 2만6000여 명에게 생중계됐다. 인질극이 시작된 순간을 화상으로 지켜봤던 신도 올리비아 젤링과 스테이시 실버먼은 “예배가 갑자기 ‘기도’에서 ‘패닉’으로 변했다. 무서웠다”고 말했다.

“미국은 유대인의 목숨에만 관심이 있지. 내가 문제인 걸까, 미국이 문제일까.”

아크람의 이 말에 시트런워커는 바짝 긴장했다. 그는 보름 전 설교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反)유대주의가 있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201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반유대주의자가 예배당에 난입해 11명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언제든 테러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설교 전 신도들에게 비상구 위치를 알려주는 등 대비 훈련을 해왔다.

이날 예배당 주변에는 경찰 특수기동대(SWAT) 등 200여 명이 배치됐다. 아크람은 연방수사국(FBI) 협상팀에 시디퀴의 석방을 요구했다. 인질들에겐 “나는 피를 흘리는 인간이다.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

인질극은 11시간 만에 끝났다. 인질범은 사망했고 인질은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WP는 “특수기동대가 예배당에 진입할 때 인질범이 총을 겨눴고 총성과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예배당 공동 설립자인 아나 아이젠도 줌 화면을 통해 상황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경험을 책으로 내도록 도왔던 그는 역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인 어머니에게 이날 일을 전했다. 100세인 그의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국제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