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떠난 아프간, 자유 아닌 혼란만 남아 [글로벌 이슈/신수정]

신수정 국제부 차장 입력 2021-08-04 03:00수정 2021-08-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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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미군 철수 이후 자신들은 탈레반의 보복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 있다며 미국 정부에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카불=AP 뉴시스
신수정 국제부 차장
“탈레반은 북베트남군(월맹군)이 아니다. (베트남전 때처럼) 아프가니스탄의 미국대사관 지붕에서 사람들을 헬리콥터로 대피시키는 광경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아프간 철군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철군으로 1975년 남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 함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이같이 말했다.

미국은 2001년 당시 아프간 집권세력인 탈레반이 9·11테러 배후인 오사마 빈라덴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2001년 10월 아프간을 침공한 뒤 20년간 병력을 주둔시켜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아프간의 미군 작전을 종료한다며 9·11테러 20주년에 맞춰 미군 철수를 끝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5월부터 철군 작업을 시작해 현재 주둔군의 90%가 아프간을 빠져나갔다. 최대 군사 거점인 바그람 공군기지에서도 철수해 철군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미국을 도와 2001년부터 아프간에 있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도 병력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했지만 상황은 그의 말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탈레반은 미군 철수가 본격화된 이후부터 아프간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면 현재 친미 성향의 아프간 정부가 무너지고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정보기관들을 인용해 아프간 정부가 미군 철수 이후 6개월∼1년 안에 무너진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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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1973년 3월 남베트남(월남)에서 철수했고 월맹군은 약 10개월 후에 평화조약을 깨고 공격을 시작해 미군 철수 이후 2년 1개월 만에 사이공을 점령했다. 미국과 탈레반은 지난해 2월 주요 도시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은 평화조약을 맺었다. 탈레반은 미군의 철수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평화조약을 깨고 4월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현재 탈레반은 점령지를 점차 넓혀 아프간 영토 절반 이상을 장악했고 국경 지역도 손에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은 이제 주요 도시 탈환을 목표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2일 “현재의 악화된 상황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철군 결정 때문”이라며 “탈레반은 지난 20년 동안 더 잔인해졌고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평화, 번영, 발전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떠나면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아프간 주민들이다. 특히 여성들과 미군에 협력했던 이들은 탈레반에 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탈레반은 1994년 결성된 극단주의 정치세력으로 1996년부터 2001년 미국의 침공 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다. 탈레반은 여성 교육과 취업을 금지하는 등 강압 통치를 해왔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은 아주 잔혹한 사람들에게 학살당할 위협에 남겨졌다”면서 미국의 철군 결정을 ‘실수’라고 비판했다.

탈레반을 피해 아프간을 떠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아프간 정부 재난관리부의 굴람 바하우딘 자일라니 부장관은 지난달 AFP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한 달 반 동안 26개 주에서 3만2384가구가 집을 떠났다”고 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 난민은 2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탈레반이 재집권하면 난민 수는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국가 건설을 위해 아프간에 간 것이 아니다. 미래와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에서 미군의 임무가 8월 말 종료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 말이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간을 공격할 당시의 작전명이었던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가 아프간에 정착하는 건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요원해 보인다.

신수정 국제부 차장 crystal@donga.com
#미국#아프간 철군#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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