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카슈끄지 암살 배후’ 사우디 왕세자 면죄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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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보고서 공개로 결론 내고도 연루자 76명 비자 제한 후속 조치
사우디 왕세자는 제재대상서 빼
바이든 1일 관련 입장 밝히기로

미국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라고 결론을 내면서도 그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후 줄곧 강조했던 인권의 가치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1일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엔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우디를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지난달 26일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DNI는 이 보고서에서 “왕세자는 (카슈끄지 암살에 관여한) 왕국 경호팀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세자의 승인 없이 이런 종류의 작전이 수행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왕세자가 이 작전을 ‘승인했다(approved)’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을 찾았다가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 후 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 살해 혐의로 8명을 기소했고 이들은 지난해 9월 징역 7∼20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입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우디 사법당국의 재판 결과는 사건의 배후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다. 미국 정보당국의 이번 보고서 공개로 사우디 왕세자가 암살 사건에 책임이 있었다는 게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도 정작 무함마드 왕세자에게는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미 행정부는 보고서 공개의 후속 조치로 무함마드 왕세자 경호담당자, 전직 관료 등 사우디 시민권자 76명에 대한 비자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명단에 왕세자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새 행정부 들어 중동 내 정세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미국이 동맹국 사우디 왕실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왕세자를 제재하면 미국 무기의 사우디 수출 등 군사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미 당국의 고려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과 유엔 등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카슈끄지가 생전에 칼럼을 써왔던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왕세자는 살해 혐의에서 유죄다”라며 “바이든은 그에게 면죄부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인권특별보고관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왕세자에게 다른 범죄자들에게 한 것처럼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정부는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을 승인했다는 미 정보당국의 보고서 결론에 대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사우디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보고서는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된 허위로, 이런 부정확한 결론을 내린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뉴욕=유재동 jarrett@donga.com /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카슈끄지 암살 배후#미국#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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