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반도 전체 지배 욕망 못버려… 핵 포기 준비도 안돼”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1-01-12 03:00수정 2021-01-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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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4>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한국의 외환위기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한국은 외부로 눈을 돌리고 세계 각지에서 무역과 투자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제공
“북한은 아직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핵을 포기할 준비도 안 돼 있다.”

미국 뉴욕의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인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미국과 북한이 건설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북한 인권 이슈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도 했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제금융협회(IIF)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던 그는 1996년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로 직장을 옮겼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신용등급 평가를 맡아 수차례 방한했고 자연스럽게 한국 경제와 안보 상황에 대한 식견을 쌓았다. 번 회장은 인터뷰 도중 자신이 1970년대 후반 미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한국에서 3년간 활동한 점을 얘기하며 이때 한국에 “정이 들었다”고 한국말로 얘기했다. 그가 2015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코리아소사이어티는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을 위한 비영리단체다.

―바이든 시대 한미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주요기사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하면 동맹들과 더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다. 방위비분담금협정같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관계에 미쳤던 불확실한 점은 이른 시간에 해결될 것으로 본다. 주한미군 철수 위험도 상당히 사라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불신하고 다자주의를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시대가 되면 한미 양국은 더욱 확고한 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북-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바이든 당선인은 외교 경험이 많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냈고 부통령 경험도 있다. 그의 행정부는 다자주의 접근을 선호하는 중도 성향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일단 과정을 중시하고 실무진 차원에서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이런 순서를 무너뜨리고 톱다운(하향식)으로 밀어붙였다. 처음엔 이게 좀 먹히나 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를 갖고 있고 미국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시도해볼 만한 접근법이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에게는 4년이란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북핵 문제에서 좀 더 손에 잡히는 진전을 이루려면 톱다운과 보텀업(상향식)을 섞은 하이브리드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실무진에서 결정을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한미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제거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방위비분담금협정 문제나 주한미군 철수 여부 말이다. 그리고 한미 양국 간에 매우 강한 동맹을 유지하는 게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다. 미국과 일본 간 동맹도 중요한 문제다.”

―동맹 강화가 당장 북핵 해결로 이어질 수 있나.

“김정은이 마치 신의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그래, 북한은 핵무기 없이도 잘살 수 있어’라거나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에 참여하면 잘살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길 바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 지난번 평창 겨울올림픽이나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우리는 돌파구를 찾았다. 그래서 각자가 서로를 잘 알게 되고 2017년 같은 위험한 상황을 피하게 됐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 이후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은 것도 작은 성과다. 물론 북한은 여전히 핵 야망을 갖고 있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북핵 문제가 결국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란의 경우를 보자. 국제사회가 이란 핵합의를 이뤘지만 아직 이란의 핵 포기를 유도하지 못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1970년대 팔레비 왕조 때부터다. 그들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만든 게 아니라 자기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고 만들었다. 북한도 이 점이 걱정된다. 김정은과 그의 아버지는 정권 생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북한은 아직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북핵 문제를 비관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되는 점이다.”

―결국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인가.

“2018년 남북 관계가 해빙됐을 때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김정은이 패배를 인정하고 핵무기를 어떻게든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패배를 인정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은 달랐다. 가령 소련이 해체될 때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했다. 이들은 지역 패권을 추구할 나라도 아니었고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유엔이 올해도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과 북한이 건설적인 관계를 정립하려면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북한이 유엔의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 비핵화의 첫발을 내딛는다 해도 인권 문제로 미국이 거는 제재가 따로 있다. 북-미 관계가 조금이라도 진전을 보기 위해서는 북한 인권 문제는 다뤄져야 하고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의 미중 관계는 어떻게 진단하나.

“물론 좋지는 않다. 두 나라 간에는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적자, 중국의 지식재산권 절도 등 여러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아마도 조금 다른 수단, 가령 중국과 협력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관세 문제에 있어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처럼 중국에 강하게 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의 딜레마다. 무역에 있어서 어느 한 나라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상당히 위험해진다. 물론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 경제대국이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건 어쩔 수 없다. 이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은 다자무역협정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회원국이 아니다. 가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에도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외부로 눈을 돌리고 세계 각지에서 무역과 투자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팬데믹 전후 세계 질서는 어떻게 달라질까.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다.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중국은 워싱턴 컨센서스, 즉 미국이 만든 글로벌 경제의 룰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기초 인프라 건설을 통한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 같은 방식도 만들어 냈다. 세계 무역과 투자의 흐름이 워싱턴이 아니라 베이징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위기에서 그리 피해를 입지 않았다. 주요 20개국(G20) 중에 거의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 중국은 다른 모든 나라보다 한 걸음 앞서 가며 글로벌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다. 이번 위기가 지나면 선진국들의 부채 과잉, 소득 격차, 중산층의 구매력 저하, 이런 요소들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각국이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지원에 정책의 포커스를 맞추지 않으면 경제의 강한 반등은 꽤 오랜 기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을까.

“아직은 아니다. 여전히 미국이 세계 경제의 글로벌 리더로 남을 것이다. 다만 중국의 부상도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이번 팬데믹이 세상을 뒤바꾸기보다는 지금의 트렌드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속화할 대표적인 트렌드가 중국의 부상이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에선 저성장과 정부 부채 문제가 계속 악화될 것이다.”

―통제사회인 중국의 성공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아닌가.

“아니다. 사람들은 번영이 아닌 자유를 얻기 위해 민주주의를 원한다. 물론 자유를 얻는 게 번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번영을 동경하는 것도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도 EU 회원국으로서 받게 되는 제한들로부터 영국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유와 인권을 누리기 위한 의지는 팬데믹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다.”

―앞으로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은….

“일단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글로벌 경제는 반등할 것이다. 올해 하반기가 될지 2022년 상반기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등은 올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반등 후 3, 4년이 세계 경제의 고비가 될 것이다. 주요국의 부채 과잉이 가장 심각하다. 각국은 실업난과 기업 파산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썼다. 물론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돈은 공짜가 아니라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뉴욕주립대 졸업(생물학 전공)
△한국에서 미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 (1970년대 후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 석사
△국제금융협회(IIF) 수석 이코노미스트
△1996∼2015년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아시아·중동 수석부사장 등 역임
△2015년 8월∼현재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미 컬럼비아대 겸임교수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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