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가 빠진 추수감사절, ‘메리’가 빠진 크리스마스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0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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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싹 바꿔놓은 美 명절

미국은 10월 핼러윈, 11월 추수감사절, 12월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명절 3종세트’로 연말 시즌을 장식합니다. 예년 같으면 들뜨고 흥겨운 기분이겠지만 올해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후 첫 연말 시즌인 만큼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죠.

요즘 미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연말 인사법을 바꿔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에는 “해피 쌩스기빙!”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데요. 올해는 앞쪽 ‘해피’를 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로 ‘메리’를 빼야 한다구요. 별로 해피하거나 메리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죠. 그냥 “쌩스기빙!” “크리스마스!”라고만 인사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이 웃긴 인사법에 미국인들은 완전 찬성 모드입니다. 누가 처음 제안한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찬성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립니다. 코로나19가 삶의 대부분을 바꿔놓더니 이제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명절 인사법까지 바꿀 태세입니다.

올해 미국 추수감사절에는 대형 가족 모임이 많이 줄어들 전망이다. 보건당국은 5,6명 이내의 가까운 가족들만 모여 식사할 것을 권하고 있다.패밀리 에듀케이션
올해 미국 추수감사절에는 대형 가족 모임이 많이 줄어들 전망이다. 보건당국은 5,6명 이내의 가까운 가족들만 모여 식사할 것을 권하고 있다.패밀리 에듀케이션


지난 주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가을 및 겨울 명절 특별 방역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올해는 때가 때인 만큼 일찌감치 발표했다고 하네요.

미 가이드라인은 최근 발표된 우리나라 추석 방역수칙과 대개 비슷합니다. 연말에 고향 방문이 많다 보니 이동 자제를 권고하는 것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반면 문화적 차이도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은 다른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갈 경우 사전에 필히 그 집에 연락해 방역 수준과 절차에 대해 의논하고 확인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추석 때 어른들 집에 가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야 대놓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좀 어렵지만 사전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확실히 좋은 예방법인 듯 합니다.

미국 추수감사절에는 고향 방문 인구가 급증하면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올해는 이동 자제 권고가 나온 만큼 교통 체증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WTTV
미국 추수감사절에는 고향 방문 인구가 급증하면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올해는 이동 자제 권고가 나온 만큼 교통 체증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WTTV


또 CDC 가이드라인은 음식을 모여서 먹지 말고 이산가족처럼 떨어져 먹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서 거리두기 정도가 아닌, 아예 서로 얼굴을 다른 쪽으로 향하게 하거나 아예 한 명은 소파에서, 다른 한 명은 부엌에서, 또 다른 한 명은 방에서 먹는 식으로요.

여기에 핼러윈 얘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핼러윈을 즐기는 문화가 많이 퍼져 있죠. 특히 ‘코스튬 파티’라고 부르는 귀신이나 유명인 분장 파티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입니다.

귀신이나 유명인 분장을 하고 모여 즐기는 핼러윈 파티. 올해는 비대면 파티가 늘어날 듯 하다. CNN
귀신이나 유명인 분장을 하고 모여 즐기는 핼러윈 파티. 올해는 비대면 파티가 늘어날 듯 하다. CNN


CDC는 이것 역시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북적이는 코스튬 파티에서는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인데요. 해골 탈 같은 분장용 마스크는 코로나19 마스크 대용이 될 수 없으며 분장용 마스크 위에 코로나19 마스크를 겹쳐 쓰는 것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부터 내 몸을 지키고자 하는 결심은 누구나 다 똑같겠지만 모두 내 마음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미국처럼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방역수칙에 대한 거부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스크 하나 쓰는 것에서부터 저항이 상당하죠.

저항세력을 설득하는데 는 상당한 사회적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보건당국이 설득방법까지 세세하게 가이드라인으로 발표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주로 언론이 담당하죠. 그래서 요즘 미국 언론에서는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코로나19에 비협조적인 가족 멤버 설득 비법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예컨대 비협조파에게 코로나19 통계를 들이대는 것은 ‘돈트(Don’t),‘ 즉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통계라는 것은 언제나 왜곡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코로나 감염을 사례로 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기사들을 몇 개 읽다보니 심리학자나 정신건강학자들의 공통적인 결론이 있습니다. “설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어느 정도 설득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라는 겁니다. 매정하게 들리기는 합니다만 이제 그런 세상이 됐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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