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주재 대사관 철수 위협…실행땐 군사행동 가능성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9일 15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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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서 자국 대사관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밝힌 뒤로 이라크 정국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측에서 이라크 정부에 자국민 안전 보장을 이유로 반미 세력 억제를 요구하자, 친(親)이란 성향 민병대가 자극을 받아 공격을 되레 늘려갈 조짐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8일(현지 시간) 미군이 주둔중인 바그다드 공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로켓 발사 공격이 2차례 이뤄졌다. 로켓은 공항이 아니라 민가에 떨어져 일가족 3명을 포함해 5명이 숨졌다. 이날 현지 경찰은 “친이란계 시아파 민병대가 벌인 소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친이란계 시아파 민병대인 카타입헤즈볼라(KH)는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심해진 뒤로 주기적으로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각국 대사관이 몰려 있는 소위 ‘그린존’과 미군 주둔 바그다드 공항을 노린 공격을 감행해왔다. AFP통신은 “(최근 1년 기준) 미군 기지나 인사를 노린 로켓 및 폭탄 공격이 최소 39차례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친이란계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을 화염병 등으로 습격한 데 이어, 미군이 올해 1월 3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고드스군 사령관을 무인기로 제거하며 반격에 나서자 양측 간 대립이 격화됐다. 즉각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알발라드 공군기지와 그린존에 이란과 친이란계 민병대의 로켓 공격이 이뤄지면서 전면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불거지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겨냥한 군사 보복 대신 경제 제재 방침을 밝힌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대사관과 미군 기지를 노린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올 3월 12일에도 바그다드 북부 미군 기지가 로켓 공격을 받아 미군 1명 등 총 3명이 숨지기도 했다.

28일 바그다드 공항을 겨냥한 로켓 공격은 미국이 자국민 위협을 이유로 대사관 철수까지도 고려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에 이뤄졌다. 27일 워싱턴포스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날 무스타파 알카드히미 이라크 총리를 만난 자리서 미국인에 대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만약 지금과 같은 위협이 지속될 경우 대사관을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이라크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앞서 20일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서도 대사관 철수 가능성을 알렸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도 직후 이라크 대변인실은 “미국 정부가 다시 철수 계획을 고려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나섰다. 가디언 등 외신들은 이라크 알카드히미 총리가 유럽 국가들에 “미국이 대사관 철수에 나서지 않도록 설득해달라”고 요청하며 상황 수습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라크 정부는 친이란 민병대 세력 확대를 경계하는 가운데 KH 추정 단체가 바그다드 공항을 공격하면서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란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미군에 의해 축출된 이래, 이라크 내 시아파 세력에 자금줄을 대면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현재 친이란계 시아파 민병대는 이라크 정부군에 맞먹을 정도로 세력이 확대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대사관 철수 발언을 두고서, 미국이 중동 영향력을 줄이려는 전략적 판단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서 자국민 보호 등을 이유로 임기 중 중동서 미군을 감축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연장선상에서 대사관 철수 등도 자국민 보호를 위한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이달 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국은 이라크 주둔 병력을 이달 중 5200명에서 3000명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라크 내 한 시아파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사관 철수를 통해 미 대선 전에 해외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당혹스러운 논란과 잡음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내놨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사관을 철수한 뒤 적극적으로 친이란계 무장세력에 대한 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 대선을 앞두고 이라크가 이란과 미국의 대리전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카이로=임현석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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