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항고” 1년 10개월 만에 첫 사법대응 나선 일본제철, 속내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4일 16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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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피고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1년 10개월 만에 처음 사법적 대응조치에 나선 것은 일본 정부와의 교감하면서 자산 강제매각(현금화)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일단 상황관리를 하면서 양국의 정권 교체 등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보겠다는 일본 측의 의도가 깔려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언제든 강공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 시간 벌면서 명분 쌓기 나선 日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4일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자산압류명령에 즉시항고 의사를 밝힌데 대해 “현재 한일 정권 아래에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힘들다고 보고 정권 교체 이후까지 감안하고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추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일본 측이 ICJ로 가져갈 때를 대비해 명분과 증거를 쌓고 있다는 것.

또 만약 강제징용 배상 명목으로 일본제철의 자산이 강제로 매각된다면 일본제철로서는 세계적으로 ‘전범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안게 된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일본제철으로서는 돈(배상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하고 싶은 게 솔직한 속마음일 것”이라며 “일본제철 입장에서는 사법 절차에 관여해 자산 강제매각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4일 기자회견에서 “관계기업(일본제철)과 긴밀히 연대해가며 여러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의연히 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일단 일본제철과 교감하면서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지만 일본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태도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힘이 빠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강경대응을 취해 핵심 지지층을 끌어 모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고 말했다.

오코노기 교수도 “한국의 문재인 정권과 일본의 아베 정권이 서로 내셔널리즘에 기반해 점차 타협하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 韓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 가능”
스가 관방장관 뿐 아니라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경제산업상 등 일본 각료들은 4일 기자회견에서 일제히 ‘일본제철 자산이 현금화되면 보복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자산매각’은 일본제철 자산이 실제로 현금화되는 시점일 수도 있고, 한국 법원이 자산매각명령을 내리는 시점일 가능성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보복조치에 대해 △외교적 조치(주한 일본대사 소환, 한국인 비자 발급 규제) △경제적 조치(관세 인상, 금융 조치, 수출규제 강화) △국제법을 통한 조치(ICJ 제소, 세계은행 산하 투자분쟁해결국제센터 제소) 등 총 3가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사법절차에는 관여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며 “현금화 절차는 사법절차의 일부이므로 행정부 차원에서 언급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정부가 조건부로 종료를 유예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해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종료가 가능하다”며 “협정을 1년마다 연장하는 개념은 현재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고 있는 만큼 강제징용 기업의 자산, 압류 절차와 관련해 우선 일본과 대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당국자는 “일본이 별도로 외교 채널을 통해 보복 조치를 알려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도쿄=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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