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생기면 미국 끌어들이는 아베, 美 중거리미사일 배치 9월 추진

주간동아 입력 2020-07-05 10:36수정 2020-07-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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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해 12월 12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DOD
전 세계에서 중거리미사일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해 5월 의회에 제출한 ‘중국의 군사와 안보 발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사거리 1000~5500km의 지상 발사형 중거리 및 준(準)중거리탄도와 크루즈(순항)미사일 1150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미사일방어국(MDA)이 구분한 사거리에 따른 미사일 종류를 보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은 사거리가 1000km,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은 1000~3000k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3000~5500km를 각각 말한다.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은 사거리가 5500km 이상이다. 중국 미사일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IRBM이 160기, MRBM이 450기, 지상형 순항미사일(GLCM)이 540기, SRBM은 1500기다. 중국이 보유한 사거리 1000km의 미사일 정도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사거리 3000km 이상이면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다.

미국이 INF 탈퇴한 진짜 이유
중국의 지역 미사일 위협과 각종 미사일 현황. 자료 CSIS

미국이 지난해 8월 2일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한 것도 중국의 중거리미사일 전력 때문이다. INF는 미국과 옛 소련이 냉전시대를 종식하고자 합의한 첫 군축협정으로, 1987년 12월 8일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명했다. 이 조약은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km 중·단거리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846기, 소련은 1846기를 3년에 걸쳐 모두 폐기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괌 킬러’로 불리는 DF-26을 시험발사하고 있다(왼쪽). 중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 DF-26. CCTV, China.mil
미국 정부는 INF 파기 이유로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중거리미사일 전력이 대폭 강화돼 자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중국의 사거리 1500km인 DF(東風·둥펑)-21D와 사거리 4000km인 DF-26을 가장 위협적으로 본다. ‘항모 킬러’로 불리는 DF-21D는 항모 등 미군 함정들뿐 아니라, 일본 열도 전역과 오키나와 등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까지 공격할 수 있다. ‘괌 킬러’로 불리는 DF-26도 미군 항모와 일본 열도 전역, 주일 미군기지 및 괌까지 충분히 타격 가능하다.


중국은 그동안 INF를 체결한 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음먹은 대로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해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인도·태평양사령관 시절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배치한 중거리탄도/순항미사일의 95%가 INF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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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해 8월 18일 중거리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DOD
미국은 ICBM 전력에선 중국을 압도하지만 다른 미사일 전력에선 절대적으로 열세다. 미국은 그동안 INF에 얽매여 있어 중거리미사일을 1기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거리미사일 전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INF 파기 16일 만인 지난해 8월 18일 캘리포니아주 샌니컬러스섬에서 재래식 지상발사형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도 그래서다. 당시 500km를 날아간 이 미사일은 지상공격형 토마호크의 개량형으로, MK-41 발사대를 통해 발사됐다. MK-41은 루마니아와 폴란드에도 배치됐는데, 러시아 측이 사거리 2400km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고 비난해온 발사대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12일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지상발사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당시 이 미사일은 500km가량을 비행했다.


배치 후보지는 한국, 일본, 호주, 괌
일본의 류큐제도.

미국 정부는 또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상 발사형 중거리미사일을 아시아지역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과 협의를 거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배치 후보지로는 한국, 일본, 호주, 괌이 거론되지만, 미국 정부가 꼽고 있는 가장 적절한 후보지는 일본 류큐제도(琉球諸島)와 서태평양의 팔라우제도다. 전체 인구 2만여 명밖에 안 되는 섬나라인 팔라우는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을 맺고 있어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기가 용이하다. 류큐제도는 일본 난세이제도 가운데 오키나와현에 속한 200여 개 섬을 말한다. 이 중에서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섬이 가장 크다. 일본 남부 규슈와 대만 사이에 있는 류큐제도의 섬들은 활처럼 호를 그리며 중국을 둘러싸고 있어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중거리미사일 배치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적기지 공격이란 북한이나 중국 등 적국이 핵이나 대량살상 무기 등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조짐이 있을 때 적기지를 선제 타격한다는 의미다. 일본 역대 정부는 불가피할 때 적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자위의 범위에 포함돼 헌법상 허용되지만, 정책상으로는 적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실제로 일본 자위대는 외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만 최소한의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평화헌법 제9조의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과 미국의 일본 방어 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전보장조약 등에 따라 선제공격용 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6월 23일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간부회의에서 “상대국 능력이 점점 높아지는데 현재의 안보전략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억지력 강화를 논의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이런 방침에 따라 일본 정부는 6월 2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하고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 장기적 안보전략인 방위계획대강의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미·일 양국의 역할 분담 변경 필요
일본 자위대가 보유한 지대함 12식 미사일. JGSDF
아베 총리가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전략을 적극 추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상 배치 미사일방어체계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계획을 폐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7년 12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이지스 어쇼어 2기를 도입해 아키타현과 야마구치현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2년 넘게 추진해온 이 계획을 기술상 문제로 중단하기로 했다. 요격미사일을 발사한 후 200kg의 부스터(추진체)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떨어질 경우 인근 주민 피해 등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부스터 성능을 개선하려면 상당한 추가 비용과 10년 이상 시간이 걸려 결국 이 계획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베 총리는 ‘안보 공백’을 메우려면 적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왔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아베 총리로선 개헌하지 않더라도 현행 헌법을 유지하면서 적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할 경우 개헌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적기지를 공격한다는 것은 자위대가 전쟁이 가능한 군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의 미사일방어대책 검토팀의 제안을 받아 이르면 9월 중 새로운 억지대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방위대강을 연내 개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 자위대가 적기지 공격 수단으로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도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위대가 보유한 미사일은 대부분 사거리가 100km가량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위대가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도입할 경우 북한 전역은 물론, 중국의 미사일기지들도 타격할 수 있다. 게다가 미사일방어체계보다 ‘가성비’가 좋고, 혹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 데 실패했을 때 자국 영토의 피해도 막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오키나와 등 류큐제도에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강력하게 바라지만, 일본이 자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도입하는 것도 지지하는 입장이다. 물론 이 경우 미·일 양국의 역할 분담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미·일은 그동안 미국은 일본 대신 적기지를 공격하고, 일본은 이를 지원하면서 방어만 한다는 내용의 안전보장조약을 유지해왔다. 일본 정부는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역할 분담 변경 문제를 미국 정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허용하거나 도입할 경우 보복 조치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으로서도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은 엄청난 안보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은 일본의 적기지 공격 능력 전략에 안성맞춤일 뿐 아니라,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 질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4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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