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만 원 상당 시계·귀금속 송두리째 사라져”…한인 상점들 속수무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4일 1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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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32가 한인타운. 미국계 시티은행 지점은 누군가 이미 유리창을 깨 나무판을 덧댔다. 한인 은행인 호프은행,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한식당 ‘큰집’도 요새처럼 나무판자를 꽁꽁 둘러쳤다. 이틀 전 인근 메이시스백화점까지 약탈을 당하자 한인타운에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맨해튼 전역에서 약탈 방지 보강공사 주문이 밀려 들자 나무와 인부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정섭 우리아메리카 본부장은 “맨해튼 본점과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지점에 예방 차원에서 나무판 보강공사를 했다”며 “나무판과 인부를 구하는 것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마스크 구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했다.



뉴욕시가 통행금지를 오후 8시로 앞당기고 야간에 96가에서 남쪽으로 차량 진입을 통제하면서 맨해튼 심장부 미드타운까지 휩쓸었던 대규모 약탈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상인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뉴욕 최대 번화가 5번가의 고급 백화점인 ‘삭스핍스’는 군기지처럼 나무판을 대고 2m가 넘는 철제 울타리와 쇠철조망, 30명의 경비원까지 배치하는 ‘3중 방어막’을 쳤다.

약탈이 심각했던 1일 밤 맨해튼 북쪽 브롱크스 지역에서 한인 피해도 있었다. 이모 씨(47)의 브롱크스 귀금속 가게도 이날 밤 11시경 약탈을 당했다. 약탈자들이 방탄유리가 아닌 일반유리가 설치된 부분을 용케 찾아내 침입했다. 5만 달러(약 6000만 원) 상당의 시계와 귀금속 등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 씨는 “침입을 알리는 보안회사 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는 데도 통행금지 때문에 가게에 나갈 수 없었다. 통금이 풀린 새벽 5시 가게로 달려갔다가 약탈이 계속되는 걸 보고 무서워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2시쯤에야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뉴욕한인직능단체협의회 제공
뉴욕한인직능단체협의회 제공
약탈자들은 진열대와 집기까지 부쉈다. 17년간 이곳에서 가게를 키워온 이 씨는 망연자실했다. 그는 “경찰 피해보고서가 나오면 보험금을 청구할 계획”이라며 “가게 앞에 이웃들이 ‘힘내라’고 써놓고 간 쪽지를 보면서 그나마 위로를 받고 있다”고 했다.

브롱크스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또 다른 한인도 이날 밤 약탈 피해를 당했다. 그는 “가게가 털리는 동안 경찰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 뉴욕시와 뉴욕시경에 공권력 부재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달라”며 뉴욕한인회의 문을 두드렸다. 박광민 뉴욕한인직능단체협의회장(55)은 “약탈이 진정되고 있지만 시위가 계속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비상대책 회의를 열고 피해 접수를 받겠다”고 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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