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 같은 영국인 vs 중국인 같은 홍콩인[글로벌 이슈/하정민]

하정민 국제부 차장 입력 2020-06-03 03:00수정 2020-06-03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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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은 홍콩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홍콩 시민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반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노골적인 친중 및 불통(不通) 행보로 ‘최악의 행정장관’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간 홍콩을 통치한 영국은 총 28명의 총독을 보냈다. 이 중 27명은 공식석상에서 견장과 칼이 달린 흰 제복, 즉 ‘윈저 유니폼’을 입었다. 주민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반환이 코앞으로 다가온 1992년 7월 부임한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만 달랐다. 제복을 거부하고 경호원 없이 길거리를 활보했다. 달동네, 정신병원 등 음지도 즐겨 찾았다. 무엇보다 부임 3개월 만에 중국의 격렬한 반대에도 선거개혁안을 밀어붙였다.

패튼이 오기 전 한국 국회 격인 홍콩 입법회 의원 70명은 간선제로 선출됐다. 그는 투표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고 270만 명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 부분 직선제를 도입했다. 중국 관영언론이 ‘매춘부’ ‘머리 두 개 달린 뱀’으로 비난하고 영국 일각에서조차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패튼은 2017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총독 재직 당시 정신질환자로부터 “영국은 세계 최고(最古)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왜 홍콩인 의견을 묻지 않고 전체주의 정권에 홍콩을 넘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홍콩에서 받은 질문 중 가장 완벽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홍콩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이는 그의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다. 그의 부친은 아일랜드 출신의 무명 음악가였다. 또 가족 모두 가톨릭이었다. 입지전적 성공을 거뒀지만 패튼은 앵글로색슨 성공회 국가에서 일종의 ‘2등 시민’으로 사는 기분을 이해했다. 자신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중국에 넘어간 홍콩이 2등 시민은커녕 피지배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셈이다. 지금 홍콩 사람들이 누리는 실낱같은 민주주의와 식민통치 시절의 좋은 기억은 패튼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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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후 홍콩은 4명의 행정장관을 맞았다. 파란 눈의 외국인은 아니었지만 시민과의 거리는 패튼 때보다 멀었다. 초대 둥젠화(董建華) 장관은 공산혁명을 피해 홍콩으로 건너온 부모를 뒀지만 내내 중국 눈치만 보다 경질됐다. 이번에 논란이 된 국가보안법을 강행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도널드 창 장관은 퇴임 후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렁춘잉(梁振英) 장관은 2010년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 평화상을 타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줘야 한다”는 말로 세계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2017년 7월부터 집권 중인 캐리 람 장관은 중국 입맛에 쏙 맞는 행보로 현 위치에 올랐다.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을 진압했고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를 탄압하는 와중에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꼽았다. 일각에서 그를 ‘톈안먼 사태를 유혈 진압한 리펑(李鵬) 전 중국 총리의 재림’ ‘홍콩을 중국에 팔아넘긴 매국노’ 등으로 거칠게 비판하는 이유다.

그의 정무 감각과 ‘운영의 묘’ 또한 부족하다. 지난해 시위대의 요구 사항 중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 조사 등은 굳이 중국의 ‘윤허’를 얻지 않아도 본인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람은 초강경 대응만 천명하다 시위대 기세에 눌려 송환법을 철회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도 정치적 부담을 안겼다. 중국이 수차례 경질설이 제기된 그를 놔둔 이유는 예뻐서가 아니라 서방이 역이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람 장관은 과거 지하철을 탈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고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 옛 관저에서 몇 통 가져왔다”는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로도 큰 비판을 받았다. 그는 올해 7월부터 지난해보다 2.4% 오른 521만 홍콩달러(약 8억24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야권이 경제난을 이유로 인상 철회를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홍콩 젊은이들은 살인적 집값과 빈부격차로 신음하지만 영국 국적을 지닌 그의 장남은 샤오미에 취직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반환 직전 패튼 총독의 지지율은 70%에 육박했다. 국가보안법 논란이 일기도 전인 올해 2월 람 장관의 지지율은 9.1%였고 지금은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두 지도자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와 복고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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