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좌파 안티파, 테러조직 지정”… 시위 규모 커지자 이념전쟁으로 맞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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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신나치 반대 ‘안티파’ 겨냥, 보수층 결집노린 승부수 던져
美국내단체 테러조직 지정땐 ‘표현의 자유’ 헌법위배 가능성
일부 시위대 백악관 진입 시도하자 트럼프 ‘지하벙커’로 긴급 피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줄곧 ‘좌파’로 비난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극좌파 단체 ‘안티파’를 테러단체로 지정할 뜻을 밝혔다. 11월 대선에서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를 결집시키기 위해 좌파 단체를 이용한 이념 및 문화 전쟁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미국인의 친구로서 이번 비극을 악용하는 이들에게 단호히 반대한다. 증오와 혼란이 아닌 치유와 정의로 대처하는 것이 내 임무”라며 “안티파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안티파는 ‘안티 파시스트’의 줄임말로 1946년 나치즘에 반대한다는 독일어 표현에서 유래했다. 미국에서는 2007년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로즈시티 안티파’란 단체가 결성되면서 세력을 키웠다. 지도자, 회원 규모, 조직의 실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재, 동성애,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등을 반대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경찰 등 공권력 해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자와도 비슷하다. 상당수는 검은 옷을 즐겨 입고 마스크를 쓴다.

안티파는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19세기 남북전쟁 당시 남군을 이끌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항의하며 극우파와 네오나치들이 시위를 벌이자 ‘맞불 시위’를 주도하며 관심을 모았다. 극우 언론인 공격,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우파 작가 행사 취소 등에도 이들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들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면 상당한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연방정부가 테러집단을 지정하고 제재할 법적 권한은 외국 단체에 국한돼 있다. 무엇보다 미국 내 특정 조직을 테러단체로 지정하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거듭된 시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미숙한 대처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승리를 위해 안티파 위협을 과장한다고 본다. 안티파에 관한 책을 집필한 작가 마크 브레이는 워싱턴포스트(WP)에 “안티파는 조직이 아닌 이념에 가깝다. 이들이 폭력 시위를 배후 조종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아들 배런은 지난달 29일 밤 일부 시위대가 워싱턴 백악관 진입을 시도하자 ‘지하 벙커’로 불리는 긴급상황실(PEOC·Presidential Emergency Operations Center)에 약 1시간 머물렀다. PEOC는 테러 등 위기 때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피신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딕 체니 부통령 부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이곳으로 피신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남부 플로리다를 방문하고 있었다. 백악관은 지난달 31일 보안 강화를 위해 전 직원에게 출입증을 잘 보관하고, 재택근무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안내문도 보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이윤태 기자

#미국#안티파#테러단체#흑인 인종차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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