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대신 ‘버스’ 타는 부산 산타…“월급 쏟아도 아이들 웃음이 남죠”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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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187번 ‘산타버스’가 9년째 겨울 명물로 사랑받고 있다. 버스기사 주형민 씨는 일주일간 67시간을 들여 장식을 직접 만들고 사비까지 투입하며 “나눔의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주형민 씨 제공
부산 187번 ‘산타버스’가 9년째 겨울 명물로 사랑받고 있다. 버스기사 주형민 씨는 일주일간 67시간을 들여 장식을 직접 만들고 사비까지 투입하며 “나눔의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주형민 씨 제공
“제 한 달 치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갑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자부심도 생기고 즐겁더라고요. 그 순간은 진짜 산타가 된 기분입니다.”

부산 기장군 일대를 달리는 187번 시내버스. 겉보기엔 평범한 버스 같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승객들은 탄성을 내지른다.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 그리고 산타복을 입은 기사가 승객을 맞이한다. 9년째 부산 시민들에게 겨울철 명물이 되어 준 ‘기장 산타버스’의 풍경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핸들을 잡은 187번 주형민 기사(52)는 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승객들이 많다.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올해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 만드는 데만 67시간…“꼬박 4일밤 샜다”


부산 187번 산타버스의 앞모습. 새로운 저상형 수소 전기버스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려있다. 주형민 제공
부산 187번 산타버스의 앞모습. 새로운 저상형 수소 전기버스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려있다. 주형민 제공
올해 산타버스는 예년보다 더욱 특별하다. 기존 구형 버스 대신 최신형 수소 전기버스로 운행되기 때문이다. 쾌적해진 차량에 주 씨의 손길이 더해져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화려한 외관에는 그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디자인부터 재료 구매, 설치까지 모든 공정은 주 씨 혼자서 직접 한다.

그는 “일주일 동안 총 67시간이 걸렸다. 근무 시간을 빼고 하루 9시간 이상 매달렸고 3~4일은 밤을 새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60시간 넘게 작업을 하려면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못 한다. 그래서 평소 매일 10km, 많게는 20km씩 러닝을 하며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산타버스의 내부. 천장에는 구름을 연상시키는 솜털이 붙어있고, 의자는 산타 모자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안전을 위해 손잡이 일부에는 장식품이 붙어있지 않은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주형민 제공
산타버스의 내부. 천장에는 구름을 연상시키는 솜털이 붙어있고, 의자는 산타 모자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안전을 위해 손잡이 일부에는 장식품이 붙어있지 않은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주형민 제공
산타버스 내부의 모습. 주형민 제공
산타버스 내부의 모습. 주형민 제공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회사 지원이 늘었지만 여전히 비용 상당 부분은 사비로 충당한다. 장식과 선물 비용을 합치면 한 달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간다.

주 씨는 직접 준비한 산타 모자, 팔찌 등을 어린이 승객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처음 수백 개 수준이던 선물은 이제 수천 개 단위로 늘었다.

그는 “이러다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농담하면서도 “손님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어 “50대가 넘어가며 인생 철학이 바뀌었다. 소유하는 기쁨보다 나누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 ‘산타버스 팬’에서 자원봉사자로…“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

주 기사가 손수 제작한 버스 노선도의 모습. 차고지인 대진역부터 동해선을 지나 기장 대룡마을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힐링 코스’다. 주형민 SNS 갈무리
주 기사가 손수 제작한 버스 노선도의 모습. 차고지인 대진역부터 동해선을 지나 기장 대룡마을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힐링 코스’다. 주형민 SNS 갈무리
주 씨의 진심은 승객들을 움직였다. 산타버스의 운행을 돕는 ‘안전요원’들은 다름 아닌 과거 이 버스를 탔던 승객들이다. 중학생 때 산타버스를 탔던 학생이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선 것이다. 주 씨는 “도와주는 팬들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공을 돌렸다.

187번 노선은 부산 도심 대신 외곽을 도는 구간이다. 그는 이 구간을 ‘힐링 코스’라고 소개했다. 그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누구든 여행하듯 즐길 수 있는 노선”이라며 “동해선 경전철과 연계해 기차와 버스를 모두 경험하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 187번 운행하는 주형민 씨의 모습. 주형민 제공
부산 187번 운행하는 주형민 씨의 모습. 주형민 제공
버스 내부 장식은 현행 규정상 제한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버스 회사와 부산시는 주 씨의 취지에 공감해 운행을 지원하고 있다. 주 씨는 “회사가 멈추라고 하지 않는 이상,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 산타로 남고 싶다”고 전했다.

부산 187번 산타버스는 이달 말(28일)까지 시민들의 동심을 싣고 달린다.

“저는 산타를 믿지는 않지만, 산타가 꼭 굴뚝을 타고 올 필요는 없지 않나요?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타에요.”

주 씨의 말에 버스 안은 한순간 포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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