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정기간행물 ‘글로벌 트레이드 업데이트’에서 구리를 새로운 전략 원자재라고 규정하고, 2040년까지 구리 수요는 현재보다 4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구리가 사용된 지 1만 년이 넘었지만, 지금처럼 그 산업적 가치가 폭넓고 절실하게 요구됐던 시기는 없었다. 과거의 전통적인 금속을 넘어 디지털화와 전기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에너지와 인프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지금, 구리가 갖고 있는 특유의 전도성·내구성·재활용성을 바탕으로 핵심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은 구리 수요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AI의 작동 기반은 최첨단 데이터센터로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며 고도의 냉각 설비가 필요하다. 서버 간의 고속 연결, 안정적인 전력 공급, 효율적인 열 방출까지 전 과정을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구리다.
구리의 수요 증가는 데이터센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거의 모든 첨단 인프라의 중심에 구리가 있다. 전기차, 스마트폰, 배터리, 재생에너지 설비, 전력 송배전망 등 구리는 전력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동맥’이다.
대표적으로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 대비 2~4배 이상의 구리가 사용된다. 또한 태양광·풍력 발전이 활성화되면서 구리는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저장, 전달, 변환의 전 과정에 투입되고 있다. 특히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초고속 충전 인프라, 그리드 안정화 시스템 등 구리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미래 기술이 많다.
구리는 친환경성과 자원 순환성에서도 탁월하다. 재활용률이 90%를 넘고 재활용을 거친 이후에도 전도성과 물성이 거의 저하되지 않기에 완전한 순환 경제 모델 구현이 가능하다. 에너지 효율도 뛰어나 전력 손실을 줄이고, 전력 장비의 수명과 안정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탄소배출 저장에도 기여한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미국, EU, 중국 등 주요국은 구리를 전략 자산으로 간주하고 재활용 인프라 확충·고부가가치 가공 기술 개발·산업 내 활용 촉진 등 구리 중심의 산업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구리를 국가 공급망 안정성의 핵심 소재로 보고, 무역 및 관세 정책을 포함한 보호·육성 조치를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AI 등의 전략 산업은 구리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따라서 구리의 안정적인 확보와 고부가가치 활용 전략은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며, 이는 구리를 ‘수급 관리 대상’이 아닌 산업 전주기 혁신의 시작점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모든 산업의 핵심 화두로 부상한 오늘날 탄소중립, 디지털 인프라 확장, ESG 경영의 확산은 모두 산업계 전반의 근본적인 구조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 바로 ‘구리(Copper)’가 있다. 구리는 더 이상 과거의 ‘범용 금속’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순환시키는 심장, 에너지 흐름을 조율하는 설계 재료, 지속 가능한 인프라를 가능하게 만드는 전략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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