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말차(抹茶) 열풍이 거세다. 말차는 녹차 수확 전 그늘에서 키운 어린 찻잎을 증기로 쪄 말린 뒤 갈아낸 가루차를 말한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더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말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38억4000만 달러(약 5조5000억 원)에서 2029년 63억5000만 달러(약 9조1000억 원)로 65%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말차 주산지인 일본 여행이 늘면서 전세계 소비자에게 익숙해진 데다 건강 중시 트렌드와 인플루언서 중심의 모방소비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말차 소비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는 미주(美洲)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의 ‘블랭크 스트리트 커피’는 최근 말차 메뉴를 대폭 늘리며 브랜드를 재단장했다. ‘딸기 쇼트케이크 말차’ 등 말차 라인업을 전면에 내세웠고 브랜드 상징색을 ‘말차 그린’으로 바꿨다. 간판에서 ‘커피’란 단어를 뺀 매장도 등장했으며, 6월 말 기준 말차 음료 매출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말차 활용 각종 신제품 출시
CJ제일제당이 이달 출시한 비비고 ‘말차 붕어빵’. CJ제일제당 제공
롯데웰푸드가 10월 출시한 프리미엄 몽쉘 말차&딸기, 프리미엄 가나 랑드샤 말차 쇼콜라 등 3종, 빈츠 프리미어 말차 등 3종. 롯데웰푸드국내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말차 인기가 거세지고 있다. 말차를 활용한 각양각색의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올해 국내 제과업계 3사(오리온·롯데웰푸드·해태제과)에서 출시한 신제품 수만 16개에 이른다. 팥대신 말차가 들어간 붕어빵, 말차 국수, 말차가루로 무친 김치까지 나왔다. 배스킨라빈스는 소비자 아이디어 콘테스트에서 1위로 뽑힌 말차맛 치즈 아이스크림 ‘말차다미아’를 10월 신제품으로 선보였다. 스타벅스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행사 음료로 출시한 ‘말차 글레이즈드 티 라떼’는 전체 음료 판매 순위 4위에 올랐다. 아이스 말차, 말차 크림 라떼 등 말차 음료 3종을 올해 7월 선보인 투썸플레이스도 출시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50만 잔을 넘었다.
티 브랜드 ‘오설록’이 8월 제주 티뮤지엄에 문을 연 ‘말차 누들바’ 내부 전경. 오설록 제공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말차 시장 성장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말차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노화 지연, 암 예방, 혈압·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웰빙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올해 시장조사기관 닐슨아이큐(NIQ)가 19개국 성인 소비자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건강 및 웰빙 현황’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5년 전보다 건강하게 늙는 것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세계적인 말차 열풍은 말차의 본고장인 일본 여행 붐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2151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21.0% 증가하며 처음으로 상반기 누적 2000만 명을 돌파했다. BBC는 “팬데믹 이후 엔저 현상으로 일본이 매력적 여행지로 부상하면서 일본산 말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현지에서 말차를 접하며 낯선 음료에 익숙해진 경험이 수요 확대의 촉매가 됐다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지난달 출시한 ‘말차 글레이즈드 티 라떼’. 스타벅스 코리아 제공
투썸플레이스가 7월 출시한 ‘투썸 말차’ 음료. 투썸플레이스 제공●유명 스타들 따라 모방소비도 증가
이런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명 스타들이 말차를 즐기는 모습이 확산되며 모방소비도 이어지고 있다. 블랙핑크 제니는 최근 유튜브에서 “요즘엔 커피 대신 이걸(말차) 마신다”며 아이스 말차를 직접 만드는 영상을 공개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는 “젊은 소비자들이 SNS를 통해 말차를 즐기는 인플루언서를 모방하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건강한 이미지까지 맞물리면서 각광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말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세계적인 품귀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BBC에 따르면 말차의 주산지 일본에서는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에 폭염까지 겹치며 수확량이 줄었다. 국내에서도 말차 공급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기후와 수요 폭증이 겹친 영향이다. 경남 하동의 한 말차 제조업체 관계자는 “올해 봄철 저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평년 대비 생산량이 약 30% 줄었다”며 “공급량을 맞추려다 보니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3번차’(당해 세 번째로 돋아나는 찻잎으로 만든 차) 재배에 나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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