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유로 주택이 살린 伊 무소멜리
인구 1만명 지중해 마을 폐가 판매
8년간 550채 팔려… 18개국서 이주
年 1000여명 발길, 숙박시설도 늘어
“외국인이 구세주” 원주민 환대 속 정착민 교류 활발… 공동체도 재생
개조 전 황폐하게 방치된 이탈리아 무소멜리의 주택. 곳곳에 쓰레기들이 가득하다(리모델링 전, 왼쪽사진). 미국 수도 워싱턴에 살다가 무소멜리의 ‘1유로’ 주택을 산 후 해당 집을 개조하고 정착한 소냐 쿼러먼 씨(리모델링 후). 무소멜리=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지금은 미국과 무소멜리를 오가며 살고 있지만 은퇴 후에는 무소멜리에 정착할 생각입니다.”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시칠리아주의 소도시 무소멜리를 찾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재생에너지 컨설턴트 루비아 대니얼스 씨(53)가 잘 가꿔진 자신의 집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거주하기 전엔 오랫동안 폐가나 다름없이 방치됐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대니얼스 씨는 2019년 우연히 신문 기사에서 무소멜리 당국이 버려진 집들을 단돈 1유로(약 1650원)에 판매해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곧바로 아무 연고가 없는 이곳으로 와 1유로에 이 집을 샀다. 이후 6년간 1년 중 약 절반을 무소멜리에 머무르고 있다.
시칠리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는 밀라노 등 북부에 비해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됐고 인구 감소 또한 심각하다. 이탈리아의 주력 산업인 패션, 자동차, 소재 기업들이 대부분 북부에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시칠리아 곳곳에서 외부인을 유치하기 위해 ‘1유로 주택’ 사업이 시작됐다. 2017년부터 빈집 판매를 시작한 무소멜리는 이 사업을 성공시킨 대표적인 도시로 꼽힌다. 이제 해마다 1000명 이상의 외부인이 1유로 주택을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 외부인이 오자 인구 감소 멈춰
무소멜리 인구는 2001년만 해도 1만3000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젊은 층이 일자리를 찾아 북부 및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인구도 1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1유로 주택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도시는 활기를 되찾았다. 사업 시작 후 현재까지 약 550채의 주택이 판매됐다. 2023년 인구는 9915명으로 2022년과 똑같다. 인구 감소세가 멈춘 것이다. 또 18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영구 거주하고 있다.
이곳의 빈집 주인들은 시 당국에 해당 집의 열쇠를 맡긴다. 그러면 당국과 계약을 맺은 부동산 업체가 이 주택을 사려는 구매자를 찾아주고 계약까지 대리해 준다. 다만 1유로 주택 구매자는 3년 안에 주택 외부를 개조해야 한다. 이 의무의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5000유로(약 825만 원)의 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 집값은 사실상 무료지만 통상 1만∼5만 유로(약 1650만∼8250만 원)의 개조 비용은 주택 구매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주민이 가장 반기는 부분은 낮은 거주 비용, 저렴한 물가, 한겨울에도 5∼10도 내외의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풍광 등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 출신 디자이너로 무소멜리에 거주하며 원격 근무를 하는 소냐 쿼러먼 씨는 “워싱턴에서 집을 사려면 최소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가 든다. 개조 비용을 포함해도 이곳의 집값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훨씬 저렴하다는 점에 끌렸다”고 했다.
그는 “생활 물가도 낮다”면서 “카푸치노 한 잔에 3유로(약 4950원), 한 끼 식사에 10유로(약 1만6500원)밖에 들지 않고 미국과 달리 팁도 없다”며 웃었다.
1유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관광객도 대폭 늘었다. 사업 시작 직전인 2016년에는 관광객이 152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1621명으로 9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숙박 시설 또한 사업 전에는 20개 정도에 불과했지만 현재 200개 이상으로 10배로 늘었다.
주민들도 변화를 체감한다. 가족들과 40년 된 가구 판매점 ‘몬타니노’를 운영하는 아드리아나 몬타니노 씨는 “1유로 사업 이후 매상이 수십 배 늘었다”고 했다. 부동산 업자 나탈리 밀라초 씨 또한 “외국인은 무소멜리의 구세주”라며 “이들이 없었으면 도시가 완전히 황폐해졌을 것”이라고 했다.
● 끈끈한 공동체 문화도 한몫
무소멜리 당국은 도로, 전기 등 기반 시설을 보수 및 관리하는 데 집중했던 기존의 인구 감소 대책과 달리 이주민들의 정서적 동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당국은 이주민들에게 마을 축제 참여, 로컬 상점 운영 등을 적극 권고한다. 기존 주민들과의 이른바 커뮤니티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을 들이는 것이다.
이주민들 또한 무소멜리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로 시칠리아 농촌 지역사회의 끈끈한 유대감, 즉 ‘아콜리엔차(accoglienza)’로 불리는 환대 문화를 꼽았다. 대니얼스 씨는 친해진 지역 주민의 아들이 태어나자 그의 대모(代母)가 됐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에 있을 때보다 친구를 사귀는 게 훨씬 쉽다. 모두가 서로를 알아가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호주 출신 요리사로 역시 1유로 집을 사들인 후 정착한 대니 매쿠빈 씨(61)는 2021년 무소멜리 중앙 광장에 공용주방 ‘커뮤니티키친’을 만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고 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세페 카타니아 무소멜리 시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동체가 없는 도시 재생은 의미가 없다”며 “‘1유로’라는 싼 집값은 상징일 뿐 새로운 주민들을 지역 사회에 얼마나 통합시켰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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