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범죄 피해자에게 묻다]
사건 발생땐 복잡성 따져 수사 결정
수사 중복 피하려 상시 협의체 가동
내년 10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이후 수사기관 간 수사 대상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서 벌어졌던 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검찰청법을 개정해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대형참사 사건에 한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할 수 있었던 검찰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수사 개시 범위를 해당 범죄로 축소한 것이다. 이마저도 2022년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부패범죄와 경제범죄로 국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 대상 범죄를 1395개까지 늘렸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법무부는 올 9월 다시 시행령을 손질해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545개로 대폭 줄였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수사 대상을 나눌 경우 중첩된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 간 관할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당시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경쟁적으로 내란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수사기관들은 서로에게 “사건을 이첩하라”고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영국 등 해외에선 사건 유형별로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조정 절차를 체계화해 수사기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가령 금융사기·뇌물·부패 등을 수사하는 영국 중대부정수사청(SFO)은 수사 영역을 정해 두는 게 아니라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복잡도와 난도를 기준으로 수사 개시를 정한다. 동시에 경찰과의 수사 중복을 피하기 위해 상시적인 협의체를 가동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실은 복잡하고 범죄는 서로 엮여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하나의 유형으로 자를 수는 없다”며 “검찰의 권력 통제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형사체계의 복잡성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향후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 기관별 수사 대상을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민기 기자 koo@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