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서유럽 각국은 당황했다. 페르시아만에서 서유럽으로 오는 석유의 70% 이상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중동의 석유가 끊기자 영국과 프랑스 등은 미국이 석유 비축량을 풀기를 기대했지만 미국은 수수방관했다. 바로 이 ‘수에즈 위기’를 계기로 서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소련의 석유를 수입해선 안 된다’는 합의가 깨졌다.
이 일은 오늘날의 국제정치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독일이 소련, 오늘날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게 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엔 구조적 분열이 생겼고, 그 갈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분출하게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경제학과 교수가 지정학(에너지)과 경제(금융), 민주정치 등 세 가지 틀로 오늘날의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조감도처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유로화의 탄생, 중국의 세계 경제로의 통합, 다시 찾아온 석유 수급의 불안정성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꿴다. 이어 지정학적·경제적 위기 속에서 민주정치엔 금권귀족정(plutocracy)의 경향성이 커졌고, 개혁은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기저에 있던 에너지는 앞으로의 세계에서 정치적 격동과 무질서를 주되게 실어나르는 핵심 매개가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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