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이 여러 가지 법을 만든 이유를 따져 보면 높은 사람들이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위해 만든 것 같아 보일 때가 많다. 니얼 퍼거슨이 쓴 책 ‘둠’을 읽고 나는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역사 속 여러 가지 재난과 사고들의 성격에 대해 조사하고 설명한 이 책의 내용을 보다 보면, 큰 재난이 일어난 뒤에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건 거의 본능처럼 “이게 누구 때문이냐?”고 탓할 죄인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특히 정치, 경제 상황이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탓할 사람 찾기에 더 열을 올리는 경향도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반대파 입장에서는 그 세력을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한바탕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법령이나 제도를 강화하게 된다. 대개 앞으로 비슷한 재난이 또 일어나면 그때는 책임자를 아주 무겁게 처벌하겠다고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제도를 만들 때 힘 있는 사람들, 높은 사람들이 직접 자기가 그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그 대신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인가를 지목해 “재난이 벌어지면 네가 처벌을 받는다. 그게 싫다면 알아서 최대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라”는 식으로 제도를 꾸리기 쉽다. 그러나 이렇게 처벌만 무거워지면 하급 조직이나 담당 기관에서는 똑똑한 사람들부터 그 일을 하지 않고 떠나 다른 일을 하려 한다. 재난 대비는 외려 더 힘들어진다.
재난에 대비하는 업무의 가장 큰 특징은 온 힘을 다해 일을 잘 수행해 재난을 막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에 재난 없는 평범한 나날이 계속됐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일한 사람의 공적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2020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세계에 퍼졌을 때 나라마다 자기 나라의 보건 당국이 뭔가 잘못해서 피해가 이렇게 심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2024, 2025년 “금년에는 큰 돌림병이 나타나지 않은 걸 보니, 보건 담당자들이 참 일을 잘하네”라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재난에 관한 대비는 일을 잘할수록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끔 재난이 벌어지면 온갖 다툼의 표적이 된다. 이런 세상에서 의욕적이고 적극적으로 재난에 대비하는 일을 맡아 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후의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을 위해 지원하고 투자하여 일을 맡은 사람을 도와주는 쪽에 더 무게를 싣고자 의식적으로 애써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재난 대비 업무를 하는 곳에 어떻게 인재를 모으고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재난 대비의 이런 독특한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날씨와 관련된 재난과 사고는 더 잦아질 것이다. 다른 방향에서는 정보화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하면서 정보 보안과 통신망 보안에 관한 갑작스러운 사고들이 큰 해를 끼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에 여러 과거의 재난을 돌아보는 ‘둠’ 같은 책이 다룬 고민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코로나19 피해를 중심으로 설명한 책이긴 하지만, 전염병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여러 재난을 다루고 있는 데다가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보다는 여러 방향의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채로운 지식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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