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베테랑과의‘논쟁’…이상윤 “효과적인 방법 찾을 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1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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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라스트 세션’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C.S. 루이스 역을 맡은 배우 이상윤. 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C.S. 루이스 역을 맡은 배우 이상윤. 파크컴퍼니 제공.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연극 무대에 선 건 처음이었다. 관객석은 그저 어두운 공간이었다. 매 공연 관객들은 빽빽하게 앉아 있었지만 얼굴은커녕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뒤, 2년째 무대에 서고 있는 그 배우의 시야는 점점 밝아져 이젠 4~5번째 줄에 앉은 관객들의 표정도 선명하다. 연극 ‘라스트 세션’(Freud’s Last Session)에서 열연 중인 배우 이상윤(41)의 이야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C.S.루이스 역을 맡은 그를 14일 오후 서울 대학로 TOM 지하의 대기실에서 만났다. ‘라스트 세션’은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쓰고 오경택이 연출한 작품으로 작년에 첫 공연을 올렸다. 1939년 9월 3일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날이 배경이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자 옥스퍼드대 교수인 루이스가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서재를 찾아와 격론을 펼치는 2인극이다. 프로이트 역은 신구·오영수, 루이스 역은 이상윤·전박찬이 맡았다. 이상윤이 맡은 루이스는, 당시 83세였던 프로이트가 설파하는 허무주의적 무신론에 맞서 “신은 실재(實在)한다”고 기독교 변증을 펼치는 인물이다.

연습실에서의 이상윤. 파크컴퍼니 제공.
연습실에서의 이상윤. 파크컴퍼니 제공.


“루이스는 굉장히 열정적이면서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가진 철학에 대해 단단하다고 느꼈어요. 무엇보다 신을 믿는 것에 진심이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하려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지난해 첫 공연을 준비하던 그는 루이스의 일생을 다룬 영화 ‘섀도우랜드’(1993)를 여러 번 보고 연극의 원작인 책 ‘루이스 vs. 프로이트’도 두 번 넘게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재공연을 준비할 때는, 실존 인물로서의 루이스를 탐구하기 보다는 각본 자체에 집중하기로 한다.

“실존 인물의 특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이건 연극이니까요. 상대 배우와의 호흡과 진심을 담은 대사, 장면과 장면 사이 이어지는 감정선 같은 것을 정리해서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했어요.”

‘라스트 세션’은 종종 ‘말로 하는 펜싱 경기’에 비유되곤 한다. 과학과 이성을 믿는 무신론자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유신론자가 칼이 아닌 말로 힘을 겨루는 2인극이기 때문이다. 무력이 아닌 논리로 무장한 두 사람이 벌이는 논쟁이 달아오를수록 극은 흥미진진해진다.

“이 작품은 결국 루이스와 프로이트, 두 사람의 텐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펜싱 경기를 보면 검투사가 맞붙는 순간도 있지만, 잠시 떨어져서 서로를 견제하며 상황을 파악할 때도 있잖아요. 경기를 보는 사람은, 그런 순간에도 긴장하고 집중하게 되거든요. ‘말의 경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이트 역을 맡은 오영수와 논쟁을 펼치는 이상윤. 파크컴퍼니 제공.
프로이트 역을 맡은 오영수와 논쟁을 펼치는 이상윤. 파크컴퍼니 제공.

그와 맞붙은 논적(論敵)들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무대 경력만 60년이 넘는 베테랑 배우 신구와 오영수. 그에 따르면 두 노배우는 싸우는 수법이 달랐다. 각각 다른 두 사람에 맞서는 그는 적수에 따라 다른 무기를 꺼내야 했다.

“신구 선생님은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프로이트예요. 그래서 선생님과 논쟁할 땐 저까지 뜨거워지고…. ‘에너지 싸움’ 같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반면 오영수 선생님은 확 밀어붙이기 보다는 대사를 잘게 씹어서 휙 던지는 타입이세요. 마치 두뇌 싸움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론은 85분간 이어지지만 늘어지는 법이 없다.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는 중간에 위트도 넘쳤다. 하지만 배우들은 한 번의 멈춤 없이 무대 위에서 A4용지 4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연기한다. 극이 끝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사히 끝났구나. 치열하게 싸웠구나. 이런 기분이 들고…. 일단 대기실에 들어오면 털썩 주저앉게 되더라고요. 잠깐 앉아 있어야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어요.(웃음) 끝나고 집에 가면 대부분 뭘 먹게 되더라고요. 맥주 한 캔이나 과자 하나라도 집어먹었어요.”

7일 개막한 연극 ‘라스트 세션’은 3월 6일까지 공연된다. 노련한 무신론자에 맞서는 젊고 확신에 찬 신학자를 연기하는 그의 고민은 보다 더욱 정교한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다.

“논쟁하는 두 사람이 대등해야 관객들도 보는 재미가 있겠죠? 끝까지 가장 효과적인 논쟁 방법을 찾을 예정입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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