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드라마 실감나네” 전직 경험 살린 작가들 ‘대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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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단골 주인공은 의사-검사, 시청자 눈 높아져 ‘옥에 티’ 빈번
의원 보좌관-교사 등 체험 녹여… 전문성 높이고 신선한 장르 눈길
수년간 보조작가 거치던 관례 깨고 데뷔작부터 시청률 고공행진

“선생님에게 사사 받았다, 이건 평생 따라다녀! 선생 이름은 제자 이름과 같이 높아진다는 거 명심하고.”

20일 종영한 SBS 클래식 음악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노교수가 제자들 앞에서 다른 교수를 치켜세우며 이같이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제지간은 절대적이고, 스승과 제자가 운명공동체인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대사다. 이 드라마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류보리 작가의 장편 데뷔작. 시청자들 사이에서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방송과는 거리가 먼 직종에서 일하다 드라마를 쓰는 전직(轉職) 작가들이 뜨고 있다. 수년간의 보조 작가 생활을 거쳐 방송국에 입성해 고진감래 격으로 성공신화를 쓴 기존 드라마 작가들과 달리 전직 작가들은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전문성 높은 서사와 현실감 있는 대사 덕에 신인 작가라는 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대표 주자는 ‘정치극 전문’ 정현민 작가다. 정 작가는 10여 년간 국회에서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 2009년 KBS 극본 공모에 가작으로 당선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정치사극(史劇) ‘정도전’(2014년), 여야 정쟁을 다룬 ‘어셈블리’(2015년),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녹두꽃’(2019년)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스타 작가로 발돋움했다.

독특한 직업을 가져야만 전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만날 수 있지만 속내까진 들여다보이지 않던 직업 출신의 작가들도 직업세계를 섬세하게 다룬다. 회사원 출신의 차해원 작가는 VIP 고객을 관리하는 회사원의 애환이 녹아있는 ‘VIP’(2019년)로 직장인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교사였던 박주연 작가는 초년 교사의 고군분투 적응기인 ‘블랙독’(2019년)으로 사회 초년생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기존 드라마 작가 중에는 덕후(일본어 오타쿠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우리말 조어) 출신이거나, 덕후에 가깝게 집요한 취재로 성가를 드높이는 작가도 있다. 프로야구단을 다룬 ‘스토브리그’(2019년)의 이신화 작가는 온라인 야구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야구 마니아다. 검찰 내부의 치열한 분위기를 그려낸 ‘비밀의 숲 2’(2020년)의 이수연 작가는 꼼꼼한 취재와 고증으로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췄다.

이 같은 전직 작가 성공시대는 특정 직업세계를 그리는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가 높아진 덕을 톡톡히 봤다. 과거 의사 검사 정치인 같은 전문직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를 보다 ‘옥에 티’를 발견해도 실수라 생각해 용인했다면, 최근 시청자들은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드라마의 주 시청자인 여성이 직업세계의 오류를 바로잡아 낸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사회생활 경험이 많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드라마를 보면 바로 알아챈다”고 지적했다.

보조 작가로 고생하느니 ‘글 쓰는’ 직장인으로 살겠다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이 공모전을 통한 데뷔라는 현실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시청자는 멜로나 가족극 서사 말고도 다양하고 전문적인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 드라마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작가#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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