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전문가들 “영화-드라마, 이래서 모방범죄 걱정”

  • Array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너무 진짜 같아서… 극사실적 디테일이 범죄교과서 역할
너무 멋져 보여서… 부패와 맞서는 폭력 등 동기강화 한몫


4일 미국 클리블랜드 시의 한 극장에서 다량의 총기를 가진 30대 남성이 검거되는 등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이나 ‘다크 나이트’의 조커(사진) 등을 모방하는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에도 모방범죄를 유발하는 내용이 적지 않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동아일보DB
4일 미국 클리블랜드 시의 한 극장에서 다량의 총기를 가진 30대 남성이 검거되는 등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이나 ‘다크 나이트’의 조커(사진) 등을 모방하는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에도 모방범죄를 유발하는 내용이 적지 않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동아일보DB
지난달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오로라 시의 한 극장에서 방독면을 쓴 남성이 총을 난사해 60여 명을 살상했다.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당 베인을 연상시킨 그의 모습은 전 세계에서 ‘영상물에 의한 모방범죄’ 논란을 초래했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 방송프로그램에도 모방범죄를 부추기는 내용이 많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등과 함께 범죄유발 가능성이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분석했다.

○ ‘범죄 교과서’ 우려 낳는 영화와 드라마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 모방심리를 자극하는 콘텐츠는 매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분석한 결과 모방범죄 우려가 커 징계를 받은 프로그램은 2008년 5개에서 지난해에는 18개로 4년 사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징계를 받은 프로그램은 얼굴에 비닐봉지로 씌우고 살해하는 법(2008년 6월 방영·케이블 채널 슈퍼액션 ‘KPSI’), 사람 암매장 순서(2009년 4월·채널J ‘란포 R’), 성추행하기 좋은 지하철 노선(2010년 10월·QTV ‘비하인드’) 등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1980∼2012년 모방범죄 사건과 전문가 의견을 취재한 결과 여러 화제작이 모방범죄를 유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에는 인천 송도에서 영화 ‘그놈 목소리’를 모방한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2005년에는 노인을 살해한 후 시신에 소금과 커피크림을 뿌려 지문을 감추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화 ‘공공의 적’을 따라한 수법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책상서랍에서도 ‘공공의 적’, ‘크라임 라이프’ 등 엽기 살인범을 그린 영화 DVD가 발견됐다. 2008년에는 영화 ‘달콤한 인생’을 모방한 방화사건이 논란이 됐다. 올해 초에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모방범죄(석궁 습격)를 막기 위해 경찰이 단속을 펼쳤다.

경제범죄 수법도 모방한다.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복역 중인 김경준의 사무실 책상에서는 미국 영화 ‘보일러 룸’ DVD가 발견됐다. 보일러 룸은 주가조작을 뜻하는 미국 증권업계의 은어이며 이 영화에는 유령회사를 통해 주식을 사고파는 수법이 나온다. 영화 ‘작전’(2009년)도 주가조작 모방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외화로는 영화 ‘올리버 스톤의 킬러’ ‘매트릭스’, 미국 드라마 ‘CSI’가 모방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최근작으로는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을 모방해 노숙인에게서 피를 뽑으려던 20대가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붙잡혔다. 6월 중국에서는 도둑들이 두께 0.1∼1mm의 가면을 착용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를 털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모방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 강화된 리얼리티와 영웅담이 모방 자극

전문가들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극사실적인 세부묘사도 모방범죄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정보량이 늘어난 시대에 관객들이 영화에서 느끼는 현실성은 흥행과 직결되기 때문에 최근 들어 ‘디테일’은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공모자들’의 김홍선 감독은 “실제 장기매매 브로커와 인천, 평택 건달 등을 통해 장기밀매 현실을 상세히 취재했다”고 말했다.

특히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 영웅물의 경우 △초월적 힘을 갖춘 악당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 △폭력을 당하는 부패한 정부와 재벌 등을 배경에 설정해 모방범죄를 자극하기 쉽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폭력과 학살이 일어나는 순간도 멋지게 그려지니 모방심리가 각인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부패한 사법기관, 재벌, 정치인 등을 단죄하는 영화 속 범죄가 모방동기를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콘텐츠들을 무조건 규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범죄로 실행되는 경우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문화 콘텐츠에 영향을 받기 쉬운 청소년층에 대해서는 시청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소속 강은경 프로파일러는 “청소년은 영화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성인과 달리 쉽게 따라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국대 최응렬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모방범죄 유발 가능성이 큰 콘텐츠에 대해서는 묘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고 시청 가이드라인도 정해 이를 철저히 지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수사전문가#범죄 교과서#모방범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