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경기 포천시에서 만난 정보기술(IT)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지난해 여름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사는 벽면용 전자 디스플레이 제조 분야에서 손꼽히는 업체로 창사 5년 만인 지난해 24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자체 보유한 신제품 특허가 27개에 이를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3배 가까이로 늘어난 700억 원대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받아놓은 주문금액만 1200억 원인 우량 중소기업이지만 지난해 8월 35억 원을 대출받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지난해 22억 원을 들여 공장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시공업자가 돈만 챙기고 종적을 감춘 것이 원인이었다. 당초 이 공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한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 은행들, 재무지표에만 신경

그러나 최근 10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져 금융당국의 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면서 끊어지다시피 한 중소기업의 돈줄은 쉽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은 2010년에 비해 30.3% 늘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출금리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0.6%포인트 높았다.
주식과 채권 등 직접금융 시장에서도 중소기업들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6월 주식 및 채권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대기업이 29조5247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0.6%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은 3389억 원으로 79.7% 급감했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감소 폭이 대기업의 약 4배에 이른 것이다.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지난해까지 수출 호황으로 충분한 사내유보금을 확보한 대기업은 올 들어 경기악화로 투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대출 수요가 감소한 것이어서 중소기업과는 여건이 전혀 다르다. 주로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극심한 소비 감소로 운전자금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 창업 초기 中企 대출 사각지대
특히 창업 5년 이내 우량 업체들이 중소기업 대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창업 생태계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재무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창업한 지 4년이 지난 IT 부품 제조업체 B사도 최근 핵심 구매처를 잡아 도약을 눈앞에 뒀지만 대출이 막혀 애를 먹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327억 원으로 2010년에 비해 25% 늘었다. 올 들어 대기업에 차량용 블랙박스를 납품하게 되면서 올 5월 생산라인을 증설키로 했지만 은행은 “대출심사가 강화돼 업력이 짧은 기업에는 돈을 내주기 힘들다”며 대출을 꺼렸다. 결국 B사는 원자재 업체에 대금을 나중에 주겠다고 간신히 설득한 데 이어 매출처에 선수금을 요청해 가까스로 라인 증설을 마칠 수 있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는 인색한 반면 리스크가 낮은 부동산 담보 대출에 몰두하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천=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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