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인천 중구 인천반도체고에서 반도체장비과 3학년 학생들이 공장 자동화 장비 제어 전용 컴퓨터인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실습 장비를 활용해 ‘반도체설비보전기능사’ 실기시험을 연습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복도에 들어서니 금색의 원형 반도체 웨이퍼가 보인다. 벽에는 ‘클린룸 출입 시 주의사항’이 붙어 있다. 파란색 방진복을 입고 에어 샤워(Air Shower)를 마친 사람들이 ‘웨이퍼 제조-산화-포토-식각-습식 세정-이온 주입-EDS(Electrical Die Sorting)-패키징’ 등 반도체 8대 공정 각각의 실습 장비가 설치된 공간으로 들어선다. 2024년부터 2년간 75억 원을 투입해 반도체 기자재를 마련한 이곳은 반도체 공장이 아니다. 인천 중구에 있는 협약형 특성화고교인 인천반도체고 풍경이다.
5월 13일 오후 12시. 4교시 수업을 진행 중인 인천반도체고의 ‘반도체 제어 요소 기술2실’의 전자 칠판에는 국가기술자격인 ‘반도체설비보전기능사’ 시험 문제와 함께 실린더가 그려진 도면이 띄워져 있었다. 교사와 학생들은 책상이 아니라 공장 자동화 장비 제어 전용 컴퓨터인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실습 장비 앞에 서 있었다. 반도체장비과 3학년 학생들이 6월에 있을 반도체설비보전기능사 실기시험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PLC 장비에 달린 실린더가 움직이면서 내는 바람 소리로 교실 안이 시끄럽다.
예산 약 10억 원으로 조성한 인천반도체고 내 클린룸에서 학생들이 파란색 방진복을 입고 반도체 8대 공정에 포함되는 ‘식각’과 ‘습식 세정’ 실습 장비를 살피고 있다. 이상윤학교 장비로 반도체 국가자격증 완벽 대비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반도체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 실적이 급성장하고 이들 기업 소속 직원들이 받는 높은 성과급이 주목받으면서 “인문계고에서 낮은 성적을 받아 지방 대학에 가느니 반도체고에서 실무 능력을 키워 고교 졸업 후 곧장 반도체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학생이 늘어난 것이다.
5월 20일 인천반도체고 입학을 희망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린 학교 체험 행사에는 50명이 참여했다. 1년 전에는 같은 행사 신청자가 20명이 채 되질 않았는데 올해는 신청자가 많아 참여자를 50명으로 제한한 것이다. 충북 음성에 있는 충북반도체고는 신입생 원서 접수 경쟁률이 지난해 1.51 대 1에서 올해 2.26 대 1로 상승했다.
채광원 인천반도체고 전문교육부 부장은 “요즘은 개인 모임에서든, 출장에서든 만나는 사람마다 ‘반도체고를 졸업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들어갈 수 있느냐’ ‘우리 아들도 반도체고에 보낼 걸 그랬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대학에 진학해도 대부분 종착지는 결국 취업이고, 최근 취업난이 심화한 가운데 반도체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반도체고 졸업 후 관련 기업에서 실무 경력을 먼저 쌓고 재직자 전형으로 서울 주요 4년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많아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재 전국에는 서울반도체고, 인천반도체고, 충북반도체고, 충남반도체마이스터고, 한국반도체마이스터고, 대구반도체마이스터고 등 6개 반도체 고교가 있다. 내년엔 용인반도체고도 문을 열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특성화고교이거나 마이스터고교로, 재학생 대부분이 대학 진학보다 반도체 분야 취업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반도체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충북반도체고는 지난해 졸업생 중 19명이 삼성전자 DS부문에, 3명이 SK하이닉스에 취업했다. 이외에도 같은 해 졸업생의 73.7%가 DB하이텍, 스태츠칩팩코리아, TSE 등 반도체 관련 기업에 취업했다.
본래 인천정보과학고였던 인천반도체고는 2024년 처음으로 반도체소프트웨어과, 반도체장비과 등 반도체 관련 학과를 개설해 내년에 첫 반도체 관련 과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이다. 이 학교는 반도체 후공정 분야 세계 2·3위 기업인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스태츠칩팩코리아 등 인근 반도체 기업과 협약을 맺고 도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평일 닷새 중 이틀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사흘은 기업에 가 해당 기업 소속 현장 교사로부터 실무 교육을 받는 식이다. 도제 교육 과정을 마친 학생은 졸업과 함께 해당 기업에 취업한다.
인천반도체고 한 교실에서 3학년 학생들이 국가기술자격인 ‘전자기능사’ 실기시험 과제를 연습하고 있다. 이상윤학교와 반도체 기업 오가며 이론·실습 병행
인천에 반도체 후공정 기업이 많다 보니 인천반도체고도 후공정 장비 실습 교육을 추가로 개설해 내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실제 기업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교육용으로 변형한 반도체 공압 실습 장비를 학교에 20대가량 설치했다. 장비 가격은 대당 4000만 원 정도다.
교사들은 방학이나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반도체 관련 연수에 참여한다. 조명곤 인천반도체고 교장은 “인천정보과학고에서 인천반도체고로 전환되면서 기존에 있던 전자통신 전공 교사들이 반도체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이나 교육부·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수를 듣고 학교에 비치된 반도체 장비 사용법을 익혀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성화고교라 이 학교 학생들은 전자기능사, 반도체설비보전기능사 등을 딸 때 국가자격증 필기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인천반도체고에서는 1학년 때 ‘반도체 기초’ ‘반도체 공정 기초’ 등 이론 수업을 통해 반도체 관련 기본 지식을 쌓고 2학년부터 실습 교육을 진행한 뒤 3학년이 되면 주로 정규 교육 시간과 방과 후 수업을 활용해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과제를 연습한다.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설비 엔지니어로 화성 17라인 S3에서 CPU(중앙처리장치)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했던 김모 씨(30)는 “기능사 자격증은 반도체 분야 생산직 취업에 필요한 기본 자격과 같은 것”이라며 “채용 과정에서 직무 면접 평가자인 과장급 직원들은 조금만 교육시켜 당장 일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하려 하기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배운 점을 현업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 “반도체고 졸업 후 갈 데 많아”
인천반도체고 반도체장비과 3학년 강현빈 군은 “학교 시설을 이용해 반도체설비보전기능사 등 자격증 시험 과제를 충분히 연습할 수 있고 자격증 시험에 대비하는 방과 후 수업도 체계적이라 학교 수업만 충실히 들어도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무리 없이 취득할 수 있다”면서 “졸업 후 반도체 분야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재직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 사무직으로 이직하는 방향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과 3학년 곽성진 학생은 “학교에서 여러 반도체 장비를 실습하며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최근 DB하이텍과 앰코테크놀로지에 오퍼레이터(반도체 생산 효율화 방법을 모색하는 생산직) 직무로 입사 지원을 했다”고 전했다.
전직 삼성전자 반도체 설비 엔지니어 김모 씨는 “반도체고 학생들은 반도체 분야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며 “반도체 설비 기술과 공정 기술은 완전히 다른 기술이면서도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니어도 ASML, 원익IPS,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 반도체 관련 지식을 활용해 일할 수 있는 반도체 장비 회사나 부품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도체산업은 노동집약적이라 메인터넌스(장비 고장 원인을 파악해 수리하거나 고장 예방 계획을 수립하는 생산직)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요즘 로봇이 인력을 대체한다고 하지만 반도체 생산직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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