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이체 대신 배달… 기술의 시대, 더 빛나는 물성의 가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5일 03시 00분


[트렌드 NOW]
우체국의 용돈배달 서비스 인기…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성 매력’
물성 추가한 아날로그 버튼 도입
AI도 로봇이란 물리적 실체로 등장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집배원이 부모님댁을 방문해 자녀 대신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우체국 용돈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면 계좌이체로 손쉽게 송금할 수 있는데 이 무슨 시대에 역행하는 서비스란 말인가. 의외로 직접 현금을 받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동적”이라고 한다.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은 현금을 찾으러 멀리 읍내에 있는 은행까지 방문할 필요가 없어 더욱 편리한 서비스다. 사이버 머니처럼 통장에 숫자만 찍혀 있는 계좌이체와 달리, 손으로 직접 현금을 쥐었을 때의 만족감도 쏠쏠하다.

디지털과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 사물 본연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다. 모바일로 전자책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종이책에 이끌린 사람들은 도서관을 찾는다. 스타필드 수원점에 마련된 별마당 도서관. 동아일보 DB
디지털과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 사물 본연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다. 모바일로 전자책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종이책에 이끌린 사람들은 도서관을 찾는다. 스타필드 수원점에 마련된 별마당 도서관. 동아일보 DB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비물질의 시대지만 우리는 여전히 체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갈구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비대면이 각광받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에서 매력을 느낀다. 책을 읽는 인구는 줄어도 오프라인 도서전 인기는 여전하며, 록 음악은 듣지 않지만 록페스티벌은 기꺼이 참여한다. 클래식 음반을 사는 이들은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인기 연주자의 콘서트 티켓은 단 몇 초 만에 매진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물성(物性)의 대상에 이끌리는 ‘물성 매력’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토스(위 사진)와 토스가 출간한 ‘더머니북’(아래 사진). 토스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토스(위 사진)와 토스가 출간한 ‘더머니북’(아래 사진). 토스 홈페이지 캡처
비대면 산업 부문에서는 물성을 활용해 자사에 실체를 부여한다. 디지털뱅킹 ‘토스’는 오프라인 지점은 물론, 종이 통장도 없는 핀테크 기업이다. 토스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 왔는데 2021년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토스가 생각하는 핀테크라는 업의 본질, 토스가 일을 하는 방식, 조직문화 등을 다큐에 담아 브랜드의 메시지를 콘텐츠를 통해 전달했다. 지난해 5월에는 금융생활 안내 서적인 ‘더머니북’을 출간했다. 금융생활에 필요한 콘텐츠를 담은 책으로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여했는데 사람들은 부스에서 나만의 머니북을 만드는 체험을 통해 토스의 철학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상품에도 물성을 추가해 매력을 높인다. 모든 제품에서 버튼을 없앴던 애플은 최근 2년 연속으로 아이폰에 아날로그 버튼인 ‘액션 버튼’과 ‘카메라 컨트롤’을 추가했다. 현대차는 물론 유명 해외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자동차 비상 버튼 등을 터치스크린 방식에서 물리버튼으로 변경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은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화면에서 제공해 편리하지만, 긴급 상황에서 사용하기엔 물리버튼에 비해 직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도 자사 전자책에 종이책처럼 밑줄을 치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기능인 ‘필기 모드’를 추가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업 철학과 조직 문화도 물성으로 전달한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2022년 문을 연 오피스 ‘더큰집’은 조직 문화의 물성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아한형제들의 조직 철학 중 하나가 “가족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인데, 이 가치를 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사옥 회의실에 자녀 이름을 붙였다. ‘1번 회의실’ 혹은 ‘소회의실’ 같은 이름 대신, ‘선우회의실’, ‘리우회의실’ 등 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붙이고, 해당 어린이가 직접 쓴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팻말을 달았다. 조직 문화를 물리적 공간에 녹여 구성원들이 유대감을 갖도록 유도한 것이다.

디지털과 AI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에서 무형의 가치를 유형의 물성으로 변환하는 흐름은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러한 물성 매력에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같이 쏟아지는 최신 기술과 신개념 서비스를 소비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직접 쓸모를 느낄 수 있게 할 물리적 경험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추상적인 설명보다는 물성을 통해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다.

향후 디지털 경제가 발달할수록 물성 매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가령 현재 정보기술(IT)·전자 산업의 가장 큰 화두인 인공지능(AI)은 머지않아 ‘로봇’이라는 물리적 실체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소비자는 어느 때보다 사물 본연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거대한 기술의 대변혁 속에서도 물성의 가치는 여전히 빛날 것이다.

#비물질의 시대#물성 매력#우체국#용돈 배달 서비스#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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