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보호의 선구자 노벨[기고/김완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5일 03시 00분


김완기 특허청장
김완기 특허청장
지난해 작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제124회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만으로도 전 세계가 주목할 만큼 노벨상의 권위와 명성은 대단하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의 유언으로부터 시작됐다. 19세기 말, 무려 2400억 원의 재산을 노벨상 기금으로 기부한 그는 뛰어난 사업가이자 발명가였을 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과 보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인물이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등을 개발하며 350여 개의 특허를 확보했고, 핵심 제조 공정은 영업비밀로 보호했다. 직원들의 급여 인상과 무상의료 등 파격적인 대우와 복지를 제공해 인재 유출도 효과적으로 방지했다. 그 결과, 그의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 2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최적의 성공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기술 패권 시대에 살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국가 간 대규모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 개발과 기술 보호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들며, 핵심 기술을 특허와 영업비밀로 철저히 보호하려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어렵게 개발한 핵심 기술을 유출하는 기술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97건, 피해액은 무려 23조 원에 달한다. 기술 유출 범죄는 우리 산업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경제 성장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자명하다.

기술 보호를 위해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신속한 범죄 수사를 통해 촘촘한 보호망을 구축해야 한다. 특허청은 지난해 10월 기술 유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 유출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 차원의 기술 보호 체계 확립을 위한 전략이 마련된 것이다. 한편으로 박사, 기술사, 변리사 출신이 근무하는 특허청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기술경찰을 출범(2021년)시켜 기술범죄 수사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술경찰은 반도체 웨이퍼 연마 관련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산업스파이들을 검거하여 수천억 원의 피해를 예방한 바 있다.

또한 핵심 기술이 담긴 영업비밀은 철저한 보안 조치를 통해 비밀로 관리해야 한다. 유용한 기술 정보라도 비밀로 관리되지 않으면 영업비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도 기술 유출 범죄를 발견했지만 비밀로 관리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기술 정보로 접근자 제한, 비밀 표시 등 일상에서 실천하는 기술 보호 활동이 큰 역할을 한다.

노벨은 기술 개발과 보호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고, 1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물리, 화학, 경제, 문학 등 각 분야의 인재 발굴에 공헌하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은 기업을 성장시키고, 자본 축적과 재투자로 이어져 산업과 경제, 더 나아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다. 이는 기술이 제대로 보호될 때만 가능할 수 있다. 기술 보호는 선택이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

#특허#기술 개발#기술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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