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 배출권거래제라는 또 다른 규제가 들어오게 된 것에 대해 굉장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배출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강행하겠다는 것은 난센스”.
10여 년 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시행을 앞두고 쏟아져 나온 주장들이다. 당시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애초 계획했던 2013년보다 도입을 2년 늦췄지만 우려는 여전했다. 반대로 환경단체는 제도 시행이 또 한 차례 유예될 것을 우려해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진통 끝에 우리나라는 2015년 1월부터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국가 차원의 배출권 거래제를 시작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적 노력에 동참한 것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이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이후 배출권 거래제는 제도의 적용 범위를 넓혀 현재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74%를 관리하고 있으며, 배출효율기준 할당 방식의 비율과 유상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여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고 있다. 또한 할당 대상업체만 참여하던 시장에 시장 조성자와 증권사가 들어오면서 제도 초기에 비해 거래량이 약 20배 증가했다. 그 결과 2018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점차적으로 감소하는 성과도 나타났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의 탄소배출 및 감축에 대한 이해도, 즉, ‘카본 리터러시(Carbon Literacy)’를 증진시켜 최근 쟁점이 되는 탄소 국경조정제도(CBAM)나 여타 탄소 무역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제공했다.
다만 현재 배출권 거래제는 아직 충분한 감축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본격화되는 국제 탄소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정비하여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2026∼2035)’을 수립하여 배출권 거래제의 향후 10년간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계획을 통해 첫째 온실가스 감축 기능을 강화하여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배출 허용 총량 설정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둘째, 탄소 다배출 업체가 빠르게 탄소를 감축하도록 유상할당은 부문·업종별로 차등화해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감축 여력이 큰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크게 늘려 갈 것이다. 셋째, 금융기관과 같은 제3자에게 배출권 시장의 문을 활짝 열고, 다양한 배출권 거래 형태를 도입하는 한편, 배출권 기반 금융상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넷째, 기업의 탄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할당 방식을 개선하고, 유상할당 수입금이 기업의 탄소 감축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투자를 통한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과거 총, 균, 쇠가 문명 흥망의 핵심적인 요소였다면, 21세기 기업과 국가의 생존은 탄소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에 필요한 탄소 경쟁력을 갖추고 온실가스 감축과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정부·기업·금융기관·개인 둥 우리 모두의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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