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SAFY’-SK ‘오픈콜라보’ 등… 청년들 대상으로 지원 잇달아
코딩 언어-IT 실무 중점 교육… 현장 필요한 인재 양성에 한몫
학생들도 “취업 큰 도움” 반겨… 삼성, 매년 1000억 원 예산 투입

‘청년 취업’ 팔걷은 기업들
8일 오후 2시 반 서울 강남구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 서울 캠퍼스. 강의실에 들어서자 40여 명의 교육생이 팀별로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팀에 다가가자 금융학과를 졸업한 ‘문과생’ 장세진 수강생(27)이 노트북에 외계어처럼 보이는 코딩 언어를 타닥타닥 입력 중이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장 수강생 옆으로 쪼르르 모여 ‘쓰레기통’을 주제로 열띤 논의를 펼쳤다.

수강생은 모두 대학 졸업 예정자이거나 졸업을 한 취업준비생이다. 교육 과정은 모두 무료이며 매달 100만 원의 교육비를 지원한다. 생활비 마련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부담과 시간을 줄여주는 일종의 지원금이다. SSAFY에만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수강생은 “문과생이지만 기업들이 IT 실무 능력을 채용 과정에서 많이 본다는 뉴스를 접하고 SSAFY에 지원했다”며 “실제 기업과 유사한 환경에서 팀원들과 합의점을 찾아가며 협업과 실무 능력을 배울 수 있어 취업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경험 쌓기’에서 ‘실무 역량’으로… 변화하는 기업들의 청년 프로그램

기업들의 청년 지원 프로그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기업들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화해 오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LG글로벌챌린저 등 특정 주제로 해외에 보내주는 ‘해외 탐방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학생들에게 해외에서 견문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고 채용 과정에서도 혜택을 주는 식이었다. 이 밖에도 ‘스펙 열풍’이 불며 대학생 기자단이나 봉사단 등 ‘단순 경험 쌓기’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해외 이동이 제한된 데다 비대면 산업이 급성장하며 IT 인력난이 심화되자 당장 투입이 가능한 ‘실무형 인재’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SSAFY 외에도 △포스코 ‘청년AI·빅데이터 아카데미’ △LG전자 ‘에이머스’ △네이버 ‘부스트 캠프 AI 테크’ 등이 AI와 프로그래밍 등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키우는 대표적인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시행한 기업의 청년 채용 인식 조사 결과(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신입 채용 시 47.3%가 ‘전공의 직무 관련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밝혔다. 반면 채용 시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요소는 봉사활동(30.3%)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엔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던 시기에 글로벌 인재가 많지 않다 보니 해외 탐방 같은 프로그램이 많았다”며 “현재는 우수한 역량을 갖춘 IT 개발자들이 필요하고, 청년들도 실무 경험을 원하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코로나19 속 ‘협업 경험’… 문과생도 IT 역량 강화

최근 채용 시장이 직무 중심의 수시·경력직 채용으로 바뀐 점도 청년들이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찾는 이유다. 기업들이 과거 정기 공채에서 대규모 신입사원을 뽑은 뒤 교육을 하기보다 당장 실전에 필요한 직무 역량을 갖춘 인재를 찾는 추세로 변하고 있어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대졸 수시 공채 비율(대기업 74개사 기준)은 2018년 18.0%에서 지난해 58.5%로 최근 4년간 40%포인트 넘게 늘었다.
황예진 오픈콜라보 클래스 수강생(25)은 “국비를 지원받아 들을 수 있는 수업도 있지만 단순히 개발 툴 사용법만 배우고 실무와는 동떨어져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며 “IT 실무를 배우는 사설 기관은 비용이 수백만 원이라 부담됐는데 기업의 장학금을 받으며 실무 경험을 쌓고 현직자 피드백까지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문과생들은 이과생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IT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업의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SSAFY의 경우 수료생의 35%가 문과생 등 소프트웨어 비전공자들이다. 문과생의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다 보니 기업 프로그램을 통해 IT 실무 역량을 높여 취업 경쟁력을 갖추는 방안이다.
○ 기업 ESG 실현·청년 취업 돕는 선순환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실무 역량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기업의 ESG 성과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점을 강조한다. SSAFY의 경우 2018년부터 지금까지 졸업한 수강생 3678명 가운데 2770명(75%)이 취업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국내외 730개 IT 기업에 취직했고 카카오와 네이버에는 100명 넘게 들어갔다. 최근에는 컬리와 토스 등 성장 스타트업으로 취업 인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날도 SSAFY 강의실에는 각 팀마다 한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SSAFY의 한 담당자는 “빈 곳은 교육 기간 중 IT 업계 등으로 취직해 ‘조기 수료’를 한 학생들의 자리”라며 “1년간 이곳에서 집중 교육을 받게 되면 현업에서 2년 정도 일한 수준까지 실력을 갖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과거 관(官) 주도의 수직적인 사업에서 탈피해 민관이 함께하는 청년 역량 강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들과 손을 잡고 ‘청년도약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청년 고용을 지원하는 기업에 수여되는 ‘청년 고용 응원 멤버십’에 가입한 기업은 삼성전자, LG, 포스코 등 70개에 이른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청년 지원 프로그램처럼 사회적 역할을 다하면 좋은 이미지를 불러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며 “정부만 청년 사업을 하면 실무 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고 정권에 따라 사업이 사라질 수 있는 만큼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