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치에 투자하는 MZ세대… “난치병 후원기업 주식 샀어요”

이지윤 기자 , 이소연 기자 입력 2021-03-06 03:00수정 2021-03-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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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주식투자통해 사회에 목소리 내는 소액주주 청년들
“친환경-투명성 등 추구하는 기업가치 지켜주고 싶어 투자”
투자수익은 환경단체에 기부해… 심리적 만족감 주식이상 가치지녀
또래 집단과 투자가치관 공유하며, 성과급공유 운동등 시장에 영향력
“제게 주식 투자는 ‘응원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에요. 주식을 산다는 건 그 기업에 힘을 보태주는 거잖아요. 이왕이면 내가 진심으로 지켜주고 싶은 가치에 돈을 쓰고 싶었어요.”

취업준비생 이지흔 씨(25·여)는 지난해 12월 초 생애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요즘 말로 주식 초보자를 뜻하는 ‘주린이’(주식+어린이)다. 시드머니(종잣돈)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30만 원씩 모아왔던 적금을 깨 마련했다.

요즘 또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모였다 하면 주식 얘기를 할 정도다. 이 씨도 마땅한 투자처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1순위로 꼽은 체크리스트는 수익성이 아니었다. 바로 ‘선취력’(선함을 취하는 영향력)이었다.

기업 윤리, 소수자 배려, 수평적인 기업 문화 등…. 이 씨가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매수한 종목은 매일유업. 비록 10주를 보유한 소액 주주이지만 투자를 통해 얻은 심리적 참여도는 대주주 못지않다. 이 씨는 “매일유업은 해마다 적자가 나는 사업인데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분유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며 “눈앞의 이익보다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의 가치가 내 가치관과 맞았다. 그 가치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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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에게는 주식 투자도 사회에 선취력을 끼칠 수 있는 참여 방식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이 씨도 바이오 기업에 지원서를 낼 때 해당 기업이 진행하는 실험 절차를 꼼꼼히 살펴본다. 혹시나 동물권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는지 확인한다. 연간 30만 원씩 기부용 적금 통장을 따로 들고 있을 정도다.

○ MZ세대 “우리는 투자자이자 활동가”

주식 투자 열풍을 이끈 개미군단의 핵심 전력으로 MZ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청년 세대마저 빚까지 내 주식 투자에 뛰어든다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소액일지라도 자신만의 가치를 고수하며 주식 투자에 나서는 청년들도 상당하다. 동아일보는 MZ세대 청년 7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의 특징을 분석해 봤다.

먼저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과 함께 ‘주식’을 키워드로 MZ세대의 언어연결망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주식을 언급할 때 ‘가치관’과 ‘친환경’ ‘미래’ ‘세대’ 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가차를 중시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또 이들은 주식 투자라는 행위를 ‘생각’이나 ‘믿음’ ‘도움’ ‘힘’이란 단어와 연결지었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실천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에게는 주식 투자 자체도 하나의 사회 참여”라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매수 요인은 ‘친환경’ ‘투명성’ 등 기업이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는가에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 교수는 “투자의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성과 지표도 다르다”며 “내가 지지하는 기업에 얼마나 도움을 줬느냐, 기업이 내 믿음에 얼마나 부합했느냐가 심리적 만족감을 결정한다”고 진단했다.

대학생 고유나 씨(22·여)도 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을 “투자자이자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7월 생애 첫 주식 계좌를 개설한 고 씨가 주식 투자로 얻으려는 가치는 ‘환경 보호’다. 시드머니 300만 원을 쥐고 투자처를 고심하던 그는 이달 초 전기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온시스템의 주식 30주를 매수했다. 고 씨는 “전기차 개발로 탄소 배출 등 환경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주가가 높아서 눈여겨보다가 주가가 떨어진 타이밍을 잡아 매수했다”고 말했다.

투자로 얻은 수익은 환경단체에 기부하며 수익 환원에 앞장서기도 했다. 고 씨는 주식 계좌를 개설한 지난해 7월부터 한 환경보호단체에 매달 1만 원씩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부터는 2만 원으로 기부 액수를 올렸다. 고 씨는 “주식으로 번 수익을 조금이라도 기부하면서 실제 환경 보호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주식 투자를 통해 얻은 불로소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투자 이유이자 목표”라고 했다.

MZ세대에겐 나쁜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도 원칙이 된다. 수익률이 좋고 배당금까지 나오는 효자 종목이라도 인체에 해로운 화학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한다. 고 씨는 “몇몇 사람들은 제게 ‘주식 투자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주식 투자를 하면서 사회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정윤 씨(25·여)에게도 주식 투자란 “정체성과 신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방송작가 지망생이던 김 씨는 유명 작가의 문하생을 알음알음 채용하는 관행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관행을 바꾸는 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스튜디오드래곤이란 회사를 알게 됐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신인 작가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놨더라고요. 작가 등용 루트를 다양화한 기업에는 내 돈을 투자해도 되겠단 믿음이 생겼어요. 이 기업이 추구하는 공정한 채용 과정을 지지하고 싶단 마음도 컸고요.”

고민 끝에 김 씨는 지난해 말 스튜디오드래곤 주식을 매수했다. 단 3주뿐이지만 여기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성장할 때 높은 진입장벽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 젊고 건강한 투자가 세상을 바꾼다

전문가들은 MZ세대의 투자가 비록 소액이지만 영향력은 그 이상의 크기를 가진다고 분석했다. 투자로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실제의 가치보다 클 뿐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력이란 측면에서도 상당한 저력을 가졌다고 봤다. 이 교수는 “소셜미디어를 자연스레 활용할 줄 아는 MZ세대는 소액 주주라 해도 자신의 투자 가치관을 또래 집단과 공유하며 더 많은 임팩트를 창출해낸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관련 주식을 보유한 윤영욱 씨(24)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자기만의 투자법을 공유하고 있다. 윤 씨는 “모든 세대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투자가 확대되길 바란다”며 “우리의 투자가 다음 세대는 물론 그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당장 나부터 지구의 환경과 미래 산업을 고민해 나가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씨도 윤 씨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주식 투자 일지를 작성한다. 팔로어는 아직 1326명이지만 파급 효과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고 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 원으로 시작한 돈 없는 대학생이지만, 주식 투자법을 공유하고 환경 보호라는 가치관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처음 주식 계좌를 개설한 지난해 7월 고 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주식 하면서 경제 사회 정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론 환경이 문제다. 더 나은 기술력으로 우리 지구를 지키자.’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개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면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 결집하며 가치관을 공론화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측면도 지녔다”며 “SK하이닉스 성과급 공유 이슈를 공론화한 것도 MZ세대였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로서는 불매 운동을, 조직 구성원으로서는 성과급 공유 운동을 주도하는 MZ세대는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국경 없는 인터넷 공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세계에서 통용되는 규범)를 체화한 점도 MZ세대의 특징이다. 여 교수는 “MZ세대의 눈은 이미 국내 증시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 증시에 향해 있다”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이들 몸에 배어 있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려면 한국 기업도 선제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제부터는 MZ세대의 ‘젊은 투자’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건 기성세대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인을 ESG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때 젊고 건강한 투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

이지윤 leemail@donga.com·이소연 기자
#나만의 가치#투자#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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