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파는 11만원 막걸리… 꿈으로 발효시킨 독특한 맛

박성진 기자 입력 2020-11-21 03:00수정 2020-11-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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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청년 양조인들이 빚어낸 막걸리 스타트업 붐
시향가 ’토란 막걸리’
막걸리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값싸고 마시면 머리 아픈 이른바 ‘아저씨 술’ 이미지를 벗은 지 오래다. ‘고급화’ 전략을 목표로 원료, 제조 방식, 숙성 기간 등을 다양화하면서 젊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주요 소비층으로 끌어들였다. 양조장에 직접 찾아가 막걸리를 맛보는 ‘막걸리 양조장 투어’가 성행하는가 하면, 매달 정기적으로 막걸리를 집으로 보내주는 ‘막걸리 구독 서비스’도 생겼다.

○‘청년 양조인’을 중심으로 한 막걸리 스타트업 붐
막걸리 시장의 변화는 ‘청년 양조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전통주연구소, 한국가양주연구소, 막걸리학교 등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다.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엿본 젊은 수료자를 중심으로 2030세대가 막걸리 빚기에 뛰어들면서 창업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들은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질 좋은 원료를 사용하는 등 제조 방식에 변화를 준 제품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마케팅 능력도 이들의 무기다.

한강주조 ’나루 생막걸리’
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은 ‘한강주조’는 대표적인 막걸리 스타트업이다. 고성용 대표는 36세이던 2018년 소규모 양조장을 창업했다. 한강주조는 차별화된 맛과 라벨, 디자인 등을 앞세워 단숨에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특히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일반 막걸리보다 쌀 함유량을 두 배로 늘린 ‘나루 생막걸리’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전통 주점뿐 아니라 한식당, 퓨전레스토랑 등 다양한 형태의 업장에서 납품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남 곡성의 ‘시향가’를 이끌고 있는 양숙희 대표(38·여)도 유망한 청년 양조인이다. 곡성 특산물인 토란과 친환경쌀로만 만든 토란 막걸리가 대표작이다. 토란을 칩 상태로 건조해 고두밥과 함께 15일간 숙성시키는 과정 등을 거친 막걸리는 생탁주임에도 냉장 보관 유통기간이 30일로 긴 편이다. 유통기한이 짧은 막걸리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에도 입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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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양조인 증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맛과 향은 물론이고 병 모양과 라벨 등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힌 막걸리에 대한 MZ세대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막걸리를 홍보할 수 있는 마케팅 플랫폼의 다변화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정보기기(IT) 활용에 능한 청년 양조인들은 기존 유통 채널을 활용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고급 지역 막걸리 전성시대
‘고급화’도 막걸리 시장 변화의 한 축이다. 다양한 제조 방식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막걸리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친환경쌀, 전통 누룩, 천연 암반수, 지역 특산물 등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가격이 높아졌고, 그 가치를 소비자가 인정한 모양새다.

왼쪽부터 복순도가 ’손막걸리’, 해창주조장 ’롤스로이스 막걸리’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병에 1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다. 전남 해남에 있는 해창주조장이 출시한 ‘롤스로이스 막걸리’는 완판을 기록하기도 했다. 1병에 11만 원으로 가격이 책정되면서 그 가치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없어서 마시지 못하는 술’이 되고 있다.

고급 막걸리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울산 양조장에서 빚는 복순도가 막걸리들은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손막걸리의 소비자가격이 1만2000원이지만 막걸리계의 ‘샴페인’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 막걸리보다 탄산이 풍부하기 때문에 지어진 별칭이다. 풍부한 탄산감은 제조 기법의 차이에서 발생하는데 이른바 숨구멍을 없애고 술을 밀봉해 공기 접촉을 차단한 것이 술맛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또 최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쌀을 항아리에서 발효시켜 사과 등 풍성한 과일 향을 담아낸 것도 샴페인과 비슷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를 통해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연간 10만 병 이상 팔리는 국내 대표 프리미엄 막걸리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 지역 원재료를 활용해 고유의 제조방식으로 빚는 ‘지역 특산 막걸리’도 인기다.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는 금정산성마을에서 만든 전통 누룩과 암반수를 사용해 빚는데, 그만큼 맛과 향이 특별하다. 충남 논산 ‘우렁이쌀 손막걸리’, 장성 ‘여수밤바다막걸리’, 공주 ‘왕알밤막걸리’, 전남 ‘산소막걸리’ 등도 점차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의 성공은 소규모 양조장 증가 덕분이다. 대규모 시설을 갖춘 곳에서는 한 병 한 병을 수제로 만드는 게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막걸리 업계 관계자는 “일률적인 맛을 내는 인공배양 효모가 아닌, 천연효모를 사용해 맛과 향에서 다채로움을 추구한 것이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며 “숙성 시간을 고려하면 발효에서 출고까지 적게는 30일, 많게는 150일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이에 대한 비용을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불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막걸리 산업 가능케 한 규제 완화
막걸리 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규제 완화의 영향이 크다. 먼저 2015년 12월 맥주에 한정된 소규모 주류 제조 및 판매 면허가 막걸리 등 전통주까지 확대됐다. 세법이 개정되면서 1000L 이상 5000L 미만 저장 용기를 구비하면 누구나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고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크래프트 막걸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직접 막걸리를 빚어 판매하는 ‘하우스 막걸리’의 등장도 이 시기와 맞물린다.

2017년부터 허용된 막걸리 온라인 판매는 막걸리 시장의 판을 키웠다.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는 창업자의 판로 개척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지역 특산주 면허만 있으면 언제든지 비대면으로 막걸리를 판매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전통주를 주력으로 취급하는 ‘전통주 전문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성 있는 막걸리를 소매가격으로 판매한다. 최근에는 전통주를 병 단위로 파는 ‘우리술 보틀숍’도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막걸리 시장 규모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전통주 업계 등에 따르면 2012∼2016년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3000억 원 언저리에 머물렀다. 규제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한 2017년 시장 규모는 3500억 원대로 늘어났고, 2018년에는 4000억 원대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4500억 원 규모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통주 관련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최근에는 제품을 도매 주문하는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다. ‘벨루가브루어리’는 제조사 및 수입사를 최종 판매자와 연결해주는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을 최근 출시했다. 음식점, 또는 주류 판매점이 온라인쇼핑몰에서 제품을 둘러보며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위스키, 맥주, 와인 등과 함께 전통주도 구매 목록에 포함된다. 시중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희소성 높은 막걸리들을 이 플랫폼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막걸리 산업이 외형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막걸리 관련 마케팅, 시설 설비, 콘텐츠 기획 관련 종사자도 늘고 있는 추세다.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는 창업자의 경우 마케팅, 브랜딩 등을 전문가의 손에 맡기길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에 위스키, 맥주 등을 다뤘던 인력들이 전통주 영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품에 이야깃거리를 덧입히거나, 양조장을 중심으로 ‘양조장 투어’ 등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시장은 여전히 맥주(3조 원)와 소주(2조 원) 시장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수준이다”며 “외형을 확장하기 위한 지속적인 변화가 시도돼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층 취향 맞춰야 생존” 대형 업체들도 맛-디자인-배달 변화 바람

25년만에 투명 페트병 도입하고청량감 강조 스파클링 제품 출시

온라인판매 이어 당일 배송 서비스

소규모 양조장이 주도하고 있는 막걸리 시장의 변화에 기존 대형 업체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 또한 젊은 고객 확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포장용기 교체부터 탄산감 강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판도에 발맞춰 ‘온라인 구독 서비스’ ‘당일 배송 서비스’ 등도 선보이기 시작했다.

업계 1위 업체인 서울장수는 올해 1월 대표 막걸리 제품인 ‘장수 생막걸리’의 포장을 기존 녹색 페트병에서 재활용이 용이한 투명 페트병으로 25년 만에 교체했다. 친환경 등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트렌드에 발맞춘 변화다. 올해 9월 새롭게 선보인 국내 고흥산 유자과즙을 넣은 유자막걸리 ‘달빛유자’도 같은 맥락이다. 과일향 등 색다른 맛을 원하는 2030세대를 겨냥했다.

‘지평막걸리’로 유명한 지평주조는 올해 7월 이마트와 손잡고 청량감을 강조한 스파클링 막걸리 신제품 ‘지평 이랑이랑’을 출시했다. 일반 막걸리보다 탄산감을 강화한 스파클링 막걸리다. 일반 막걸리의 3배가 넘는 병당 4800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됐지만 출시 후 10월까지 누적 판매량 8만 병을 돌파했다.

국순당은 페트병 대신 350mL 캔 포장용기에 막걸리를 담아 예상치 못한 판매 실적을 냈다. 올해 7월 내놓은 ‘1000억 프리바이오 막걸리 캔’이 주인공이다. 캔당 가격이 2500원으로 수입 맥주와 같지만 출시 후 25만 캔이나 팔렸다. 국순당에 따르면 부담스럽지 않은 용량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의 반응이 뜨거웠고, 특히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캠핑족들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막걸리 캔을 선호하면서 판매량이 늘었다.

막걸리 시장의 온라인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곳도 있다. ‘느린마을막걸리’로 유명한 배상면주가는 올해 1월 온라인 주류 판매 플랫폼 ‘홈술닷컴’을 오픈하며 막걸리 정기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간과 수량은 고객이 선택할 수 있다. 정기구독 신청 고객에게는 10%의 구매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배상면주가는 주류업계 최초로 전통주 당일 배송 서비스에도 나섰다. 배송 서비스 ‘오늘홈술’을 통해 오후 3시 이전 주문 시 당일 오후 8시까지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막걸리뿐만 아니라 김치전, 녹두전, 해물파전, 쇠고기 육전 등 ‘느린마을 전 골라 담기’도 함께 구매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외면하고서는 더 이상 막걸리 업계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행보”라며 “소규모 양조장이 제공한 변화의 단초를 기존 대형 업체들이 빠르게 흡수하며 시장 자체가 변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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