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징벌적 규제의 부메랑[동아광장/최종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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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불안, 다주택자 규제도 원인
민간임대 줄면 거주이전 자유 제약
LH가 수요변화 대응하기엔 역부족
전세 공급하는 다주택자 죄악시하면 물량 줄어 임차인 고통만 커질 것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정부는 7월 고강도의 전월세 안정대책을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강행했다. 이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점점 찾기가 어려워지고 월세도 상승 추세이다. 그동안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부인하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전월세 가격이 쉽게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전월세 시장이 이렇게 불안하게 된 이유는 임차인 보호만 생각하고 임대인인 다주택자를 죄악시해 임대주택 공급을 축소시킨 데 있다.

현 정부는 주택시장 불안의 가장 큰 주범은 다주택자라고 본 듯하다. 그동안 다주택자가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많이 구입하여 집값이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무주택자가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주택자를 없애기 위해 각종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다주택자에 대한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여러 세금을 중과했다. 당초 다주택자를 민간 임대사업자로 육성하려던 시책도 사실상 철회한 상태다. 고위 공무원부터 다주택을 매각하도록 했다. 청와대 일부 수석비서관은 다주택으로 사임하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1가구 1주택이 됐다.

정부 의도대로 실제 다주택자가 없어져 1가구 1주택 시대가 되면 주택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다주택자를 규제한다는 것은 민간 임대사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간 임대주택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주택 건설이 급감할 것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세제가 지속되면 오로지 무주택자만 주택을 구입할 것이다. 주택 수요가 줄어들면 건설회사는 주택 건설을 축소할 것이고 주택 건설 축소로 경기가 위축되고, 미래 주택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상승할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임대 주택을 구하지 못해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이 침체되고 국민 생활이 불편해진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자가 보유율은 60%에 못 미친다. 40% 이상은 임대한 주택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임대 주택 일부만 LH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고 대부분은 민간이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 임대주택이 거의 없어 다주택자가 대부분 민간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민간 임대주택이 없으면 앞으로 신혼부부는 집을 어디서 구하나? 집을 구입하지 못하면 결혼도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이다. 앞으로 결혼이 줄어들어 저출산 문제는 심화될 것이다.

예컨대 서울 강서구에 사는 교사가 강동구로 전보되면 집을 사서 이사 가야 하나? 서울에 집을 못 구해 지방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길 수도 없을 것이다. 요즈음 많이 진행되고 있는 재건축 재개발의 경우 건설 기간 중 기존 주민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 외국인은 집을 어디서 구하나? 사실상 거주이전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받게 된다.

이사 등이 줄어들면 부동산 관련 경기가 크게 위축된다. 부동산 중개소,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업체도 수요가 급감할 것이다. 냉장고 등 각종 가전제품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이와 같이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해지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경기 침체를 초래한다.

여기서 정부나 지자체가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주택 수요는 산업의 변화, 경기 트렌드 등 각종 요인에 따라 신축적으로 변한다. 판교신도시에 벤처기업이 늘어나고 마곡지구에 기업이 늘어난다. 비능률적인 공공기관이 이들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가? 현재도 LH가 공급하는 많은 임대주택은 저렴한 임대료에도 열악한 교통여건 등 입지의 한계로 많은 공실을 안고 있다. 다양한 임대수요를 정부가 일일이 판단해 공급한다는 것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와 같은 발상이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모든 수요를 공공부문이 공급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임대인 규제만으로 전월세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규제는 임대주택 공급을 줄여 임차인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서는 임차인에 대한 세제, 금융 지원은 강화하되 적정한 수익성을 보장해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게 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가 주택의 30∼40%를 공급하고 있다. 다주택자는 임대주택 공급자이기도 하다. 다주택자를 죄악시만 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임대 사업자로 육성해야 한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다주택자#전월세#부동산 대책#동아광장#최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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